26년 동안 진위 결론이 나지 않은 ‘미인도’를 두고 고(故) 천경자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가 위작임을 다시 주장하고 나섰다.
김 교수는 미술사학자인 클리프 키에포 미국 조지타운대 석좌교수, 자신의 남편인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와 ‘미인도’가 위작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근거를 정리한 책을 펴냈다. 책의 이름은 ‘천경자 코드’다. 20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천경자 코드’ 출간 간담회에서 김 교수는 “‘미인도’에는 천 화백의 다른 작품에 있는 코드가 없으므로 명백한 위작”이라고 밝혔다. 그는 키에포 석좌교수의 감정서를 공개하며 “‘미인도’는 짧은 시간에 어머니의 화풍을 흉내 낸 허술하고 조악한 작품”이라면서 “허술한 그림 하나가 작가를 고통으로 몰아넣었고, 여러 사람의 시간과 에너지를 앗아갔다”고 비판했다.
조사 결과 ‘미인도’는 숟가락, 홍채, 인중, 입술, 스케치 선 등 5가지 ‘코드’를 통해 위작임이 확인됐다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천 화백은 여인상의 특정 부위를 숟가락으로 비비고 문지른 뚜렷한 흔적을 남겼지만 ‘미인도’에는 숟가락으로 문지른 흔적이 단 한 군데도 없다”고 말했다. 또 “천 화백의 다른 그림에는 작은 홍채 속에 긁고 파들어가듯 표현한 확연한 흔적이 있지만, 미인도는 홍채 안이 텅 비어 있다”면서 “미인도에만 인중이 있는 점도 이상하다”고 덧붙였다. ‘미인도’ 속 여인의 입술을 두고는 “마치 수채화 물감으로 칠한 듯 얇고 많은 얼룩으로 채워져 있지만, 천 화백이 그린 모든 입술에서는 두터운 켜를 이루는 물감의 층이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조사 대상 그림들을 단층 사진으로 촬영하면 ‘미인도’에서만 날카로운 스케치 선이 확인된다며 “‘미인도’를 그린 사람이 볼펜 같은 필기구로 눌러서 본을 뜬 것 같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권위 때문에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고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간담회에 동석한 배금자 변호사는 “‘미인도’ 논란은 천 화백의 인권을 침해한 사건”이라면서 “민사소송을 통해서라도 진실을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의 책 출간으로 ‘미인도’ 진위 논란은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전문기관의 과학감정, 전문가 안목감정, 미술계 자문 등을 종합한 결과 ‘미인도’의 제작기법이 천 화백의 양식과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천 화백의 유족은 이에 반발했다.
현재 ‘미인도’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장품 특별전 ‘균열’에서 아무런 설명 없이 강화유리 안에 전시돼 있다. /김민제 인턴기자 summerbreez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