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증세 피하려 분할 검토"...세수 확보보다 경쟁력만 떨어뜨릴 판

■시동 건 대기업·부자증세

상법상 합법 행위 해당

정부, 제지할 수단없어

세금 부담 낮은 국가로

회사 이전 등 부작용 우려



지난 15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16.4% 오른 7,530원으로 결정되자 업계에서는 ‘인건비 줄이기’ 열풍이 불고 있다. 근로자 고용이 5명도 안 되는 영세업체는 아르바이트를 내보내고 자가노동으로 돌아서고 고용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업체는 자금을 투자해 ‘자동화기기’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고 한다. 노인·청년·여성 등 취약계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린다는 선의로 추진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그들을 노동시장 밖으로 내모는 예상 밖의 부작용을 불러온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이어 초대기업·초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많이 물리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대기업의 경우 현재 과세표준 200억원을 넘는 기업에 22%의 세율을 매기고 있는데 여기서 2,000억원 초과 초대기업은 25%까지 세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역시 소득 재분배 강화라는 선의로 추진하는 것이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몰고 올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익명을 요구한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세율이 한 번에 3%포인트 오르면 타격이 적지 않기 때문에 기업들이 저마다 대비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일부에선 최고세율을 적용받지 않기 위해 기업을 분할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덩치가 큰 대기업이 높은 세율을 피하기 위해 ‘쪼개기’를 시도하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관행이다. 과세표준이 300억원에 이르는 기업은 이익의 22%를 세금으로 내야 하는데 150억원 규모의 두 회사로 분할해 20%의 세율을 적용받는 식이다.

앞으로 2,000억원 초과 대기업은 세금 부담이 더 커지므로 이런 식의 기업 분할이 더 성행할 수 있다는 전망에 설득력이 실리는 이유다. 정부 관계자 역시 “법인세 최고세율을 인상할 때 가장 우려되는 부분 중 하나가 기업 분할 시도가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라며 “기업 분할은 상법상 보장되는 합법적인 행위여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제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전했다.


문제는 이런 식의 기업 분할이 정부와 기업 모두에 불행한 결과를 불러올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기업 분할로 최고세율을 피해 가면 원하던 세수증대 효과를 얻을 수 없고 기업 입장에서도 불필요한 분할로 자칫 경쟁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선의로 추진하는 초대기업 증세가 예기치 않은 불행을 불러올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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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아예 회사 터전을 해외로 옮기는 것도 주요 부작용으로 꼽힌다. 세금 부담이 큰 나라의 기업이 낮은 나라로 이전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일반화된 현상이다. 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MS)·오라클 등 미국의 공룡 기업들은 수년 전부터 법인세가 낮은 아일랜드나 룩셈부르크 등으로 옮겨 세 부담을 줄이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주요 선진국들은 기업들의 법인세 회피가 늘어나자 세금을 낮춰주는 추세다. 국회예산정책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법인세율 변화를 분석한 결과 35개국 가운데 21개국이 세율을 내렸다. 이 가운데 영국은 10.0%포인트나 낮췄고 일본(-9.6%포인트), 독일(-8.7%포인트), 스페인(-7.5%포인트) 등의 감소 폭도 컸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35%의 법인세율을 15%까지 파격적으로 낮추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나머지 국가 중에서도 7개국은 세율을 유지했고 7개 국가만이 세율을 높였다.

우리나라가 이런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해 법인세율을 올릴 경우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는 흐름은 불가피하다는 게 업계와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우려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우리나라 법인세는 국제적으로 봤을 때 지금도 낮은 수준이 아닌데 이를 대폭 올린다고 하면 해외이전 등 특단의 대책을 모색한다고 해서 마냥 비난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나라의 법인세 부담(지방세 포함)은 국내총생산(GDP)의 3.2%로 OECD 35개 국가 중 13위로 중상위권에 속한다. 총 조세 대비 법인세 비중(17.5%)은 7위로 더 높다. 송 부원장은 “사실 법인의 목적은 이윤을 최대한 내는 것인데 이윤을 많이 내면 낼수록 세금을 많이 내야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법인세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며 “법인세 인상은 최대한 신중해야 하며 하더라도 업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한 뒤 추진해야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서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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