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투자은행(IB) 인가 심사에 착수한 금융감독원이 ‘초대형 IB 업무에 걸맞은 역량과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창 심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 신청 증권사를 향해 던진 발언으로 볼 수 있어 그 배경에 금융투자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부 신청 증권사의 부실한 준비 상황에 금감원이 경고를 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23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진웅섭(사진) 금감원장은 지난 21일 기자 간담회에서 “(초대형 IB)제도 마련과 지정·인가는 시작점일 뿐”이라며 “성공적인 한국형 투자은행을 위해 증권사의 끊임 없는 자기변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높은 수준의 리스크 인수역량과 고객 간 이해 충돌을 관리할 내부통제시스템은 필수”라며 “확대된 업무범위에 걸맞은 역량과 시스템을 구비하도록 유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기자본 4조원 이상 조건을 충족한 신청사가 단기금융업무(발행어음) 인가를 받게 되면 채권 발행이나 유상증자, 기업공개(IPO) 등을 넘어 보다 광범위한 기업금융에 뛰어들 수 있다. 지난 7일 미래에셋대우·NH투자증권·KB증권·한국투자증권·삼성증권 5곳이 같은 날 인가 신청서를 금융위원회에 냈고 결과는 이르면 오는 9월 나올 전망이다.
단기금융업무 인가의 최종 결론은 금융위가 내린다. 하지만 금감원이 금융위로부터 심사를 위탁 받아 최종 결과의 토대가 되는 평가를 내리는 만큼 진 원장의 이번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심사 기관으로서 원론적으로 경각심을 일깨운 것일 수 있지만, 신청 증권사의 역량이 예상보다 부족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신청사의 초대형 IB 사업보고서 등 인가 신청서 작성에 모두 참여한 기관인 만큼 각 사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일부 신청 증권사는 최근 잇달아 전산장애를 일으키며 안정적인 거래를 유지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초대형 IB가 되면 업무량과 종류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만큼 안정적인 전산 시스템 마련은 기본적인 역량이자 중요한 심사 기준”이라며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형 증권사에게 기업금융을 맡기는데 자체 준비를 잘 해 놓고 인가를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더구나 신청사 5곳 모두 자기 또는 대주주의 불법행위로 인한 제재 이력이라는 아킬레스건이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도 초대형 IB의 대주주 적격성 판단에 대한 국회 정무위원들의 질의가 쏟아졌고, 최 위원장 역시 “‘고무줄 잣대’가 안 되도록 하겠다”며 엄격한 심사를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