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을 시작하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하향 평준화’였다. 스타 플레이어들의 해외 유출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김효주·전인지에 이어 지난해 ‘대세’ 박성현마저 떠나간 필드에는 뚜렷한 대안이 보이지 않았다. 절대 강자가 없는 춘추전국 판도로는 어렵게 구축한 국내 투어의 황금기를 지속하기 어려워 보였다.
지난주 말 전반기를 마친 KLPGA 투어에서는 지난해의 박성현 같은 ‘1강’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적어도 하향 평준화 얘기는 쏙 들어간 분위기다. 김지현(26·한화), 이정은(21·토니모리), 김해림(28·롯데)이 구축한 3강이 수준 높은 경기력으로 투어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 우승 문턱만 여러 차례 밟았던 김지현은 업그레이드된 아이언 샷을 앞세워 3승을 쌓았고 ‘우승 없는 신인왕’이었던 이정은은 2년 차 징크스는커녕 상반기에만 2승을 올렸다. 또 지난해 우승 물꼬를 튼 김해림은 올해도 멀티 우승에 성공했다. 6억7,700만원의 상금 선두 김지현을 이정은(5억3,000만원), 김해림(4억5,000만원)이 각각 2·3위에서 뒤쫓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의 투어 수준을 가장 간단하게 비교할 수 있는 지표는 평균타수다. 지난해 유일하게 60대 평균타수를 찍은 박성현의 기록은 69.64타였다. 올해 1위 이정은도 69타 수준(69.82타)을 마크하고 있다. 유일하게 60대 타수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는 1위부터 4위까지 4명이 71타를 넘지 않았는데 올해는 70.87타의 오지현(21·KB금융그룹)까지 7명이 71타 미만을 찍고 있다. 물론 시즌 전체 기록과 시즌 중반의 기록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전반기 경기력이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던 셈이다.
특히 지난 17일 끝난 US 여자오픈에서 KLPGA 투어의 경쟁력은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초청선수 등의 형식으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최고 메이저대회에 참가한 KLPGA 투어 소속 선수들은 이정은이 공동 5위, 고진영(22·하이트진로)이 공동 15위, 배선우(23·삼천리)가 공동 19위에 오르는 등 적응기를 거치지 않고도 맹활약했다. 또 김해림은 16일 일본 투어 사만사 타바사 대회에서 4타 차 압승을 거두기도 했다. 일본 투어 첫 출전 대회였다. LPGA 투어에서 활약하다 국내 필드로 돌아온 장하나(25·비씨카드)가 아직 복귀 첫 승을 신고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KLPGA 투어 수준이 저하되지 않았다는 증거 중 하나다.
이 밖에 김지현의 그린 적중률(79%)은 지난해 1위 박성현의 기록과 비슷하며 톱10 진입률은 이정은(73%)이 지난해 1위 박성현(65%)보다 낫다. 평균 버디와 60대 타수 작성 확률에서는 올해가 다소 떨어진다. 지난해 1위 박성현이 라운드당 4.67개의 버디를 쏟아낸 반면 올해 1위 이정은은 4.18개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60대 타수 비율 선두 박성현은 48%를 찍었고 올해 선두 고진영은 44%를 기록 중이다.
전반기 18개 대회를 마친 KLPGA 투어는 다음달 11일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로 후반기에 돌입한다. 시즌 종료까지는 12개 대회가 남았다. 각각 상금 5위와 20위에 처져 있는 김민선(22·CJ오쇼핑)과 고진영의 부활, 장하나의 반등, 8월 말 프로로 전향하는 ‘슈퍼 아마추어’ 최혜진(18·학산여고)이 몰고 올 태풍 등이 후반기 레이스의 변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