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권력이 경계해야 할 '휴브리스'의 함정

지지율 업고 고공행진하던 아베

최근 겪는 위기의 본질은 '오만'

일방성 보이는 문 대통령의 행보

스스로 '겸손한 권력' 아로새겨야

신경립 부장




일본의 정치평론가 이토 아쓰오는 일본 총리가 공통적으로 마음에 품게 되는 세 가지 욕망을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정권을 오래 유지하는 것, 스스로 의회를 해산한 뒤 치른 총선에서 승리하는 것,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욕망은 같을지 모르지만 성과는 제각기 다르다. 지난 10년간 일본 최고권력의 자리가 6번이나 바뀌었다. 그 사이 사실상의 총리 임기라고 할 수 있는 집권당 총재 임기를 채우고 의회 해산 후 총선에서 승리를 거머쥔 이는 단 한 명뿐, 아베 신조 총리다. 지난 4년여 동안 아베 총리의 정치적 성과는 독보적이었다. 단명 총리가 줄을 잇는 일본 정치의 악순환을 끊은 그는 이미 5월 총리 재임 기간에 역대 3위를 기록했다. 2014년 11월 증세 연기에 대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며 의회를 해산한 그는 조기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1강(强)’ 체제를 굳혔다. 여기에 자신의 이름을 딴 ‘아베노믹스’는 일본 경제의 오랜 불황을 종식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욕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민의 지지를 등에 업은 아베 총리는 욕망의 허들을 한 단계 높였다. 자신이 유치한 2020년 도쿄올림픽을 직접 성공리에 개최하고 정치적 숙원인 헌법 개정까지 마무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올 초 아베 총리는 결국 자민당 규정을 바꿔 9년 장기집권의 길을 텄다.

고공행진하던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급락하기 시작한 것은 공교롭게도 당 규정 개정으로 그의 권력이 최정점에 달한 시기와 맞물린다. 표면적으로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부인 아키에 여사와 아베 총리가 연루된 사학스캔들이다. 하지만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할 정도로 총리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커진 것이 단지 부정 혐의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아베 위기의 본질은 사건의 배후에 자리 잡은 그의 ‘오만함’이다.


국민의 지지 덕에 강력한 권력을 움켜쥔 아베 총리는 존재감 없는 야권과 비판적 언론에 대한 억압적 태도와 독단적인 정책 강행으로 종종 일본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정권이 장기화하자 총리의 측근인 내각 관료들과 당 고위직 인사들의 안하무인격 막말도 심심치 않게 불거졌다. 정권 전반으로 번지는 독선과 오만에도 ‘대안이 없다’며 묵묵히 참아온 일본 국민들은 비리 혐의까지 불거지자 결국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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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은 성공한 권력자가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위협적인 경쟁자도 없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국가 지도자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영국 외무장관을 지낸 신경정신과 의사 데이비드 오웬은 자만에 빠진 권력자들이 보이는 자아도취적 징후들을 ‘휴브리스(Hubris Syndrome) 증후군’이라고 진단한다. 휴브리스란 그리스어로 ‘오만’을 뜻하는 단어로, 역사가 토인비는 이를 ‘역사를 바꾸는 데 성공한 이가 자신의 능력이나 방법을 과신하고 절대적 진리로 착각하는 오류’로 정의했다. 요컨대 휴브리스 증후군이란 성공한 권력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종의 ‘직업병’인 셈이다.

일본 국민들은 아베 총리에게 대중의 지지라는 날개를 달아줬지만 그 날개가 아베 총리에게는 오만이라는 ‘독(毒)’이 됐다. 그는 지금 대중의 불신과 비난을 한몸에 받으며 벼랑 끝에 서 있다.

취임 3개월이 채 안 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이전 정권의 오만한 ‘불통’에 성난 국민들은 눈높이를 맞춰주는 대통령과 ‘허니문’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불특정한 ‘대중’만 의식하는 소통은 또 다른 불통을 낳기 마련이다. 인사부터 시작해서 일자리정책, 최저임금 인상, 탈원전 등 문 대통령이 힘을 싣는 몇몇 정책 행보에는 일방성과 독단의 그림자가 비친다. 최근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지지율은 일종의 경고라고 볼 수 있다.

“낮은 사람, 겸손한 권력이 되겠다”는 약속으로 많은 이들의 가슴을 두드린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시작됐다. 그 다짐과 열망이 지나친 자기확신과 독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대통령 스스로 ‘겸손한 권력’의 약속을 매 순간 아로새기기를 바란다.

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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