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고 좁게만 있을 뿐 넓게는 없다.”
문재인 정부의 조세정책을 두고 조세 전문가들이 내리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는 ‘조세정의’를 외치면서 대기업·고소득자 증세를 추진하고 있는데 기저에는 우리 조세제도가 불평등하며 중산층·중소기업은 적정한 세금을 내고 있지만 대기업과 고소득자는 그렇지 못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도 지난 26일 “현재 구상하고 있는 초대기업·초고소득자 증세는 조세형평성과 정의적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라며 “중산층과 중소기업에 대한 증세는 없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 조세제도가 불평등할까.
조세 전문가들의 분석과 각종 연구 결과는 이와 반대다. 세계 주요국에 비해 중소기업과 중산층이 과도한 비과세 감면 혜택을 받고 있고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비율도 높다. 대기업에 편중된 세 부담 비율도 높다.
우선 소득세의 경우 우리나라는 근로소득 면세자 비중이 세계 최상위권이다. 한국은 2015년 기준 근로자의 46.8%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일본(15.4%), 미국(32.5%) 등보다 크게 높다. 특히 중간소득층의 면세자 비율이 높았다. 연소득이 3,000만원 초과~4,000만원 이하인 근로자의 30.3%가 세금 ‘0원’이었고 4,000만~5,000만원 근로자 역시 16.4%가 세금을 안 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들을 한 줄로 세웠을 때 가장 가운데 있는 사람의 연소득은 2,892만원이다. 중간 이상의 근로자들 상당수가 조세 의무를 피해가고 있다는 얘기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조세원칙이 무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세금을 내고 있는 사람들도 주요 국가들보다 세 부담이 낮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국제비교를 통한 우리나라 세목별 세 부담 수준의 결정 요인 분석’ 보고서를 보면 평균적인 임금을 받고 있는 중산층의 소득세 실효세율은 2.9%로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0.1%)의 28.7%에 불과했다. 저소득층(평균 임금 50%)은 이 비율이 9.8%, 고소득층(평균 임금 250%)은 53.8%였다. 물론 고소득자의 세 부담도 OECD의 절반에 불과해 적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산층 이하 근로자는 국제 수준과의 차이가 훨씬 더 크다. 우리나라 소득세는 전반적으로 세금 부담이 낮은 것이 문제이지 고소득자와 서민층 간 불평등이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법인세 역시 중소기업에 대한 세제혜택이 과도한 편이다. 법인세를 한 푼도 안 내는 기업이 전체 과세 대상 법인의 47.1%에 이른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연수입 20억원 이하 중소기업의 실효세율은 11.5%로 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일본·독일 등 주요 6개국 평균(19.5%)의 59.0%에 그쳤다. 반면 5,000억원 이상 대기업은 이 비율이 89.1%에 이르렀다. 법정세율 역시 대기업에 적용되는 최고세율은 22%로 OECD 평균(22.7%)과 비슷하지만 중소기업에 적용되는 최저세율은 10%로 한국과 비슷한 복수 구간 체계를 갖고 있는 나라들의 평균(17.1%)보다 크게 낮다. 우리나라 법인세 과세 수준은 대기업의 경우 세계 수준에 근접해 있지만 중소기업은 크게 낮다는 결론이 나온다.
중소기업이 면세 비율이 높고 실효세율도 낮은 것은 30여개에 이르는 각종 비과세 감면 혜택 제도 때문인데 세부적으로 따져보면 지나친 특혜라는 지적을 받는 제도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 특별세액감면’ 제도가 대표적이다. 이 제도는 중소기업 요건만 맞으면 소득세·법인세를 5%에서 30% 깎아준다. 모두가 공평하게 내야 하는 세금에 감면 혜택을 주려면 고용이나 투자를 늘린다든지 목적과 명분이 있어야 하는 이 제도는 ‘중소기업이기만 하면’ 세금을 깎아줘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런 비판에도 지원 수준만 나날이 늘어 지난해 1조8,200억원의 감면실적을 기록했다. 중소기업 세제혜택 중 가장 큰 수준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중산층이나 중소기업이 과도한 비과세 혜택을 받고 있고 면세자 비중도 높다는 사실은 얘기를 안 하고 조세정의를 말하는 것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며 “부자증세와 함께 비과세·감면·면세자 축소 등도 추진해야 조세정의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역시 “정부가 추구하는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부자증세만으로는 부족하며 중간층 이상에 대한 세 부담도 늘려 전반적인 조세 부담률을 올리는 것이 맞다”며 “더 걷은 세금은 확실히 복지와 민생을 위해 투자하겠다고 국민을 설득해 증세하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말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