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文대통령-기업인 간담회] 총수정보 깨알숙지·경청·정책개그... 文의 '친밀한 교감'

■재계와의 소통 방식 어땠나

당 대표 시절부터 대기업 공부

기업 애로청취...피드백은 신중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2차 주요 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칵테일을 들고 권오현(왼쪽부터)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과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2차 주요 기업인과의 간담회에서 칵테일을 들고 권오현(왼쪽부터)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과 건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 허 회장님 제가 지난번에 봤을 때 걷기가 취미라고…”

28일 오후 청와대 본관 로비에서 재계와 대화하기 위해 기업인 간담회를 연 문재인 대통령이 초대받은 허창수 GS 회장에게 던진 말이다. 최고 권력자 앞에서 긴장했을 허 회장은 문 대통령의 한마디에 표정이 부드러워지면서 걷기 운동 이야기를 풀어가며 첫 대면의 어색함을 금세 잊은 듯했다. 전날에 이어 이날에도 문 대통령은 참석자들의 최근 관심사항을 꼼꼼히 파악해 이야기를 걸어 분위기 전환을 이루는가 하면 진지한 경청의 자세로 환담장을 훈훈하게 했다. 특히 조선산업 침체로 고충을 겪고 있는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에게는 “조선경기가 워낙 오랫동안 안 좋아서 고생이 많으셨다”며 “조선산업 힘내라고 박수를 한번 치자”고 기운을 불어넣어 줘 눈길을 끌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주요 기업 총수와 나눈 대화가 화제다. 야당 정치인 이미지가 강해 재계와의 접점이 없어 보이는 문 대통령이 재계와 맺은 인연과 소통 방식에 대해 분석해봤다.


①‘지피지기’, 당 대표 시절부터 재계 공부=‘대선 재수’를 한 문 대통령은 당 대표 시절부터 대기업 공부를 시작했다. 민주정책연구원이 주도한 4대 기업 연구소장 세미나에 매주 참석해 국내 경제와 주요 산업의 현실에 대해 공부해왔다. 또 야당 대표 시절 이례적으로 대한상공회의소를 찾기도 하는 등 ‘반기업’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대선 기간에는 ‘10년의 힘 위원회’라는 외곽 조직을 만들어 경제에 대한 자문을 받았다. 박봉흠 전 예산처 장관 등 대기업 사외이사 출신이 대거 포함돼 진보 진영의 비판이 뒤따랐지만 결국 문 대통령의 자산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페이퍼 보고서를 좋아하는 문 대통령은 호프 미팅에 참석한 기업 총수들의 특징과 사적인 이야기까지 다 보고받고 숙지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이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이 손주를 본 것을 축하해주고 구본준 LG 부회장의 별명이 ‘피자 CEO’인 것을 칭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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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껌뻑껌뻑’하며 경청…‘피드백’은 신중=문 대통령은 평소 과묵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당 대표와 대선 후보 시절 영입한 인사 중 대다수는 “별다른 말보다 눈을 껌뻑껌뻑하면서 말을 경청해준 것이 감동이 됐다”고 설명한다. 문 대통령은 호프 미팅에서도 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보다는 기업의 애로사항을 듣고, 기업인들의 생각을 물어본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경청을 잘한다고 해서 항상 확실한 피드백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규제 완화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는 재계의 목소리에 긍정적인 답변을 했지만 구체적인 입법계획이나 지원 방안, 시기 등에 대해서는 못 박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규제프리존법이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재계가 요구한 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③패션과 먹거리는 중소기업, 전통시장 애용=수권정당, 준비된 대통령의 이미지를 위해 대기업과의 접점을 늘려온 문 대통령은 소상공인·중소기업과 더욱 친밀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즐겨 신었던 ‘AGIO’라는 브랜드의 구두는 청각장애인들이 만들었고 독도 기념의 날 행사로 제작된 중저가의 넥타이를 매 화제에 올랐다. 문 대통령이 호프 회동의 맥주로 중소기업 맥주인 ‘세븐브로이’를 선택한 것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제품을 애용하는 문 대통령의 삶의 방식과 연관성이 깊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김정숙 여사에게 백화점을 이용하지 말라고 강조하는 등 청와대 입주 전까지 전통시장을 자주 애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④정책과 유머를 섞은 ‘정책 개그’ 구사=문 대통령은 특전사 출신이다. 무뚝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재계 총수와 딱딱한 경제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도 정책과 개그를 절묘하게 결합한 이른바 ‘정책 개그’를 구사해 차가운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노하우를 갖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7일 기업인들과의 만찬에서 “부동산 가격을 잡아주면 제가 피자 한 판씩 쏘겠다”고 말했다. 구본준 부회장이 직원들에게 피자를 돌려 ‘피자 CEO’라는 별명이 붙은 것을 거론하면서 최근 가열되고 있는 부동산시장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재계 총수들이 만면에 미소를 띤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까. “허심탄회하게 소통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문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첫 만남에 참석한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남긴 ‘후기’다. 정 부회장은 2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문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상춘재에서 맥주잔을 들어 보이는 사진과 함께 이날 대화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박형윤·박윤선기자 manis@sedaily.com

박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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