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의 ‘금한령’ 조치로 ‘유커(단체 관광객)’가 자취를 감춘 가운데 면세점에서 수 년간 매출 1위를 차지해온 국내 화장품이 뒤로 밀려났다. 현재 중국 관광객이 자취를 감추면서 빈 자리를 ‘따이공(보따리상)’이 채우고 있다. 한국 제품에 대한 중국 통관 절차가 까다로워지자 따이공이 수익을 극대화하고 보다 쉽게 세관을 통과하기 위해 해외 명품 시계와 주얼리를 택한 탓이다. 이 영향으로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의 면세점 2·4분기 매출도 뒷걸음질쳤다.
30일 A 면세점에 따르면 2014년 이후 줄곧 면세점 매출 1위를 유지해오던 LG생활건강(051900)의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 ‘후’가 올 2·4분기 13분기 만에 3위로 밀려났다. 줄곧 2위를 차지했던 아모레퍼시픽(090430)의 ‘설화수’는 아예 5위권 밖으로 순위가 떨어졌다. 이들을 밟고 면세점 매출 1·2위로 올라선 브랜드는 기존 5위권 밖이었던 럭셔리 시계브랜드 ‘롤렉스’와 럭셔리 쥬얼리 ‘까르띠에’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후는 시진핑 주석이 2013년 방한 당시 LG생건으로부터 후를 선물 받은 이후 중국 현지에서 ‘왕후’가 쓰는 화장품으로 알려지며 2014년에 처음 면세점 1위로 등극했다”며 “중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브랜드로 지난 3년간 자리를 지켜오다 올 2분기에 처음으로 순위가 내려갔다”고 말했다.
해외 럭셔리 시계·주얼리 브랜드가 면세점 왕좌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유커가 자취를 감춘 가운데 대리 구매를 주로 하는 따이공의 면세점 구매품목이 변해서다. 업계에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으로 꼽는 것은 중국 정부가 한국 제품에 대한 통관절차를 강화한 것을 꼽는다. 한국 제품을 현지에 반입하는 시간이 지체되자 따이공들이 효과적으로 수익을 남기기 위해 마진율이 높고 통관이 수월한 고가품으로 갈아탔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현지에 진출한 국내 브랜드들이 늘면서 한국 제품 구매가 이전보다 수월해진 영향도 있지만 현지 통관 절차 강화로 한국 제품 대신 해외 럭셔리 제품을 구입하는 따이공이 늘어나면서 K뷰티 대표 화장품 브랜드들의 면세점 매출 순위가 급락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주요 뷰티 기업의 실적으로 연결됐다.
LG생활건강은 올해 2·4분기 매출이 48분기 만에 역신장했다. 특히 2·4분기 화장품 부문 매출은 7,812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7% 감소했다. 같은 기간 화장품 부문 영업이익도 전년 동기대비 2.7% 감소한 1,487억 원을 기록했다. 특히 면세점 채널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6% 감소하며 전체 매출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아모레퍼시픽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매출의 25%를 차지하는 면세점 매출은 올 상반기 기준 전년 동기에 비해 14.7% 줄었고, 2·4분기 매출은 44% 가량 떨어진 2,20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2006년 지주회사 출범 후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역신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드 배치 역풍으로 중국인 관광객 수가 줄어든데다 이들을 대체했던 따이공들마저 등을 돌리면서 1분기까지 안정적인 면세 매출을 이어온 화장품업체들의 2분기 면세 매출이 직격탄을 맞았다”며 “여전히 대중의존도가 높다는 방증으로 중국 외에 국내 고객과 기타 국가 고객에 대한 마케팅을 강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