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는 계속되는 충격 속에 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정규직화의 압력, 공정거래위원회의 자제되지 않는 시장개입, 탈원전과 산업용 전기요금의 인상 가능성, 증세 논란 등 기업인들에게는 불확실성이 감당하기 힘든 속도로 누적되고 있다.
이렇게 불확실성과 반기업 정서를 키우면서 경제인들을 불러놓고 국정철학을 공유하고 일자리 만들기에 적극 나서달라고 윽박지른다. 대통령이 경영자들을 만날 때마다 발표된 투자와 신규채용을 얼마 늘리겠다는 약속대로라면 우리 경제는 이미 일자리가 넘쳐나고 정부가 매년 추경을 하면서 경기 진작에 나설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이번 정부의 급진적 경제정책 발표는 절차와 내용에서 좀처럼 납득할 수 없는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경제 문제 진단이나 분석 과정도 존재하지 않는다. 공공 부문의 고용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우리나라 공공 부문 고용비중이 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북유럽의 30%에 비해 너무 낮아서 늘리자는 식이다. 그런데 같은 보고서를 보면 20년의 긴 불황을 겪은 일본은 5%대로 우리보다 낮다. 북유럽은 의료와 교육을 공공 부문이 담당하는 대신 일본과 한국은 민간에 위임해 나타나는 통계의 허상인데도 이를 근거로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우기는 식이다.
탈원전 선언도 그렇다. 대통령이 탈원전 선언을 하고 비전문가들의 공론화위원회에서 결정한다는 식이다. 에너지 가격만큼 예측이 어려운 영역이 없다. 석유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올라 배럴당 200달러까지 간다며 에너지 자주화율이 국정목표가 됐던 것은 불과 10년 전이나 그 후 석유 가격은 20달러대까지 곤두박질쳤다. 그런데 원전을 폐기하고 석유나 가스로 전기를 생산하면 생산원가는 물론이고 무역수지 등 수많은 고려사항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성급한 결정 과정에 치밀하고 장기적인 검토가 이뤄진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설혹 탈원전이 국민적 선택이라고 해도 이렇게 공개적으로 떠들썩하게 대통령이 나설 일은 아니다. 원전은 중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 수출하는 경쟁력 있는 산업인데 우리가 먼저 폐기한다고 자랑해 국제경쟁력을 날려 버릴 이유가 없는 만큼 조용히 진행되면 될 일이다.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과 인상폭은 더 거론할 가치조차 없다. 최저임금 근로자가 빈곤층 가구에 속할 확률은 30%도 되지 않아 빈곤 축소에 비효율적인 수단임에도 다른 대안들은 고려대상이 된 흔적조차 없다. 대부분의 충격적 경제정책들이 원인분석과 진단부터 오류인 경우도 다반사이고 정책수단 대안들의 검토도 철저하게 이뤄지지 않고 정책이 가져올 후유증은 나타나면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는 식이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정책과정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주먹구구식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업이 정권의 국정철학에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정권이 시장의 원리를 존중하는 것이다.
정권이 지향하는 정책들이 있다. 그런 정책들은 결론부터 그를 정당화하려니 왜곡된 통계도 동원하고 동의하지 못하는 전문가들을 배제하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꼼수를 택하고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적폐로 삼아 반개혁 낙인을 찍기에 바쁘다.
이러한 배경에는 우리나라 정부구조의 이중성과 청와대 참모진의 이념적 편향성이라는 태생적인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다. 대통령제에 내각제적 요소를 가미한 헌법으로 인해 내각제적 장관이 있는가 하면 내각만큼이나 비중이 큰 수석과 비서진의 두 개 내각이 존재하는 형태다. 그 모순이 극대화해 나타나는 것이 현 정부다. 청와대가 이른바 ‘전대협 회장단’이 점령했다는 비판을 받고 분배주의자들이 중용된 지금 내각은 형식적으로만 존재한다. 경제를 총괄하는 경제부총리는 지금 쏟아지는 경제정책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유령 부총리가 되고 있다. 이제 내각 구성을 마쳤으니 국회의 견제도 벗어나는 숨은 권력들의 ‘망나니 칼춤’ 같은 경제 충격쇼는 여기서 멈춰야 한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KAIST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