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후 첫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28일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쏘아 올렸지만 보란 듯이 휴가를 강행했다. 국민들에게는 안심해도 된다는 메시지, 북한에는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하지만 ‘운전자론’을 내세운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과 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대화’ 방향으로 페달을 밟고 있지만 점점 더 막다른 골목으로 치닫고 있다. 뒷좌석에 앉은 손님(국민)은 불안하다. 북한은 문재인 정부의 대화 제안에 콧방귀를 뀌듯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화성-14형 발사장면을 참관한 김 위원장은 “미국 본토 전역이 우리의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 임의의 장소와 시간에 기습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과시했다”며 한국과 미국, 그리고 국제사회를 위협했다. 북한은 앞으로 ICBM을 실전 배치하거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6차 핵실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국방부도 31일 국회 국방위 현안보고 자료에서 “핵실험을 통해 핵 탄두능력을 실험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보고했다.
북한은 ‘북핵 완전체’를 만들어 주도권을 쥐고 미국과 일대일 평화협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북한은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주한미군과 전략자산 철수를 주장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끌고 나갈 것이 뻔하다. 미국과는 대화하면서 한국은 철저하게 외면하는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에 한국은 이방인이 될 위험성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에 치우친 ‘북핵 내비게이션’을 리셋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등 국제사회와 같은 방향으로 핸들을 틀면서 북한에 대한 압박과 제재 강도를 높여야 한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도 3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대화를 위한 시간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상대방이 들어주지 않는 공허한 대화 정책에 방점을 찍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대북 압박에 무게중심을 둬야 한다. 우선 안보 포퓰리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초대기업·초고소득자를 겨냥한 증세 정책은 궤도수정을 통해 치유가 가능하지만 잘못된 안보정책은 국가존립과 국민생명의 문제로 직결된다. 문재인 정부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추가 배치를 놓고 혼선을 빚었다. 국방부는 28일 오전에만 하더라도 사드 배치에 대해 일반환경영향평가를 받겠다고 발표했다. 사드 배치 반대론자들의 주장을 수용해 평가기간이 10~15개월이나 걸리는 방안을 채택했다. 사드 배치는 내년 하반기에나 가능하다는 의도가 깔렸다. 하지만 28일 저녁 북한이 화성-14형을 발사하자 사드 4기를 추가 배치하기로 말을 바꿨다. 안보정책이 여반장(如反掌)처럼 쉬워 보인다. 국민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국제사회는 정책 방향성에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베를린 구상에 집착하는 모습도 바뀌어야 한다. 북한은 우리가 제안한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다. 정책에는 타이밍이 있다. 지금은 대화에 치중할 때가 아니라 국제사회와 함께 압박에 나서야 할 때다. 문 대통령은 29일 새벽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한 자리에서 사드 추가 배치, 한미 미사일지침 개정, 독자적 제재방안 마련, 전력자산 증강 등 ‘4종 패키지’ 강경조치를 내놓았다. 그러면서도 “베를린 구상의 동력이 상실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며 대화의 가능성도 열어놓았다. 물론 대화의 카드를 살려놓는 것은 필요하지만 북한과 국제사회에 전달하는 메시지는 제재와 압박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그래야지 국제사회가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믿게 되고 북한은 정책 오판을 하지 않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압박과 대화를 오가는 갈지자 행보를 고집하다 국제사회와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전달하는 ‘투트랙의 덫’에 빠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은 북핵 내비게이션을 고쳐야 할 때다. vicsj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