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연구진이 개발한 유전자 가위기술로 인간 배아의 유전자 변이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 기술이 상용화된다면 자녀가 유전성 질환을 앓지 않도록 인공수정 단계에서 유전자를 교정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원하는 형질을 가진 ‘맞춤형 아기’를 탄생시키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문제 등 사회적 논란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김진수 유전체교정연구단장 연구팀이 슈크라트 미탈리포프 미국 오리건 보건과학대(OHSU) 교수 연구팀과 함께 진행한 실험에서 인간 배아에서 비후성 심근증의 원인이 되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크리스퍼 유전자가위(CRISPR Cas9)로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2일 밝혔다. 연구 성과는 저명 국제 학술지 ‘네이처’ 온라인판에 실렸다.
유전자가위는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에서 원하는 부위를 마치 ‘가위’처럼 잘라 내고 붙이는 교정 기법을 뜻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단일 유전자 변이로 인한 유전 질환은 1만 종이 넘는다. 혈우병, 겸상 적혈구 빈혈증, 헌팅턴병 등 희귀 질환이 많고 환자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해 이번 연구의 파급효과는 클 것으로 전망된다.
연구팀은 인구 500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유전 질환인 비후성 심근증을 일으키는 유전자 변이를 가진 남성의 정자와 정상 난자에 변이 부위를 잘라주는 유전자가위를 동시에 주입했다. 그 결과 변이 부위가 잘린 정자의 유전자가 정상 난자의 유전자와 만나 자연적으로 교정됐다. 배아에 유전자가 교정된 세포와 교정되지 않은 세포가 섞여 있는 모자이크 현상도 발견되지 않았다. 모자이크 현상이 일어난 배아는 유전병을 일으키는 변이 유전자를 후세대에 물려주는 문제가 생긴다.
이번 연구는 아빠에게만 유전자 변이가 있는 경우 비후성 심근증 변이 유전자가 자녀에게 유전되지 않을 확률을 72.4%로 자연 상태(50%)보다 끌어올렸다. 비후성 심근증은 선천적으로 좌심실 벽이 두꺼워지는 심장질환으로 젊은 나이에 돌연사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심장 질환 관련 사망자의 7%가 비후성 심근증에 의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김 단장은 “정자는 정상인데 난자에 변이가 있는 경우 난자에 유전자가위를 넣어주면 유전자 교정이 이뤄질 것”이라며 “추가 연구를 통해 이를 확인하면 비후성 심근증 변이 유전자가 자녀에게 유전되지 않을 확률을 100%로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이 같은 실험을 진행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은 얼리지 않은 정자·난자·수정란·배아를 이용한 연구가 가능하지만 우리나라는 생명윤리법에 발이 묶여 5년이 지난 동결 잔여 배아를 일부 질환 연구에만 쓸 수 있어서다. 김 단장이 미국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김 단장은 “연구 허용 질환 몇 개를 나열하는 포지티브 규제는 매우 불합리하다”며 “생명윤리법을 개정해 금지대상 질환 등 외에는 연구를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고 비동결 배아 연구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민정기자·임웅재기자 jmin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