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이버 스토킹’을 당한 직장인 A(28)씨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인스타그램(SNS)에서 A씨의 사진을 보고 반했다며 얼굴도 모르는 익명의 누군가가 지속적으로 만남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얼굴도 모르는 상대는 카카오톡으로도 성적 불쾌감을 일으키는 말들을 내뱉었다. 반복되는 행위에 신변의 위협을 느낀 A씨는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스토커를 처벌할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위협적인 발언이 없었고 A씨가 명시적으로 거절 의사 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가해자가 처벌되더라도 최대 10만원 이하 범칙금이나 구류 정도에 그친다”며 “2차 보복에 대한 두려움도 있어 피해자가 소극적으로 대처하게 된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스토킹 등 주로 여성을 겨냥한 젠더폭력이 곳곳에서 발생하며 위험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개인 문제를 넘어 사회적 문제로 커지고 있지만 국내 법체계와 대응력은 미비한 실정이다. 경범죄처벌법이나 정보통신망법 등을 근거로 사안마다 개별적 대응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미흡한 법체제는 비단 스토킹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서울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몰카 안경(안경테에 카메라 내장)’을 쓰고 여성의 엉덩이 등 신체 부위를 촬영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시계나 볼펜 등으로 위장해 외관으로는 식별이 어려운 갖가지 최신식 몰카가 범죄에 악용되고 있지만 온라인에서 검색 몇 번만으로 누구나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몰카 관련 규제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법의 사각지대는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폭력에도 존재한다. 가정폭력 가해자가 상담치료를 받으면 기소를 유예하는 ‘상담 조건부 기소유예’가 가해자 처벌을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이처럼 각종 젠더폭력과 관련해 그동안 미비했던 법안을 손본 수정법안이 여러 개 계류 중이다. 대표적인 법안이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안’이다. 스토킹 범죄 전담검사, 사법경찰관 등 ‘전담조사제’ 도입과 스토킹 범죄 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을 강화한 법안이 19대 국회에 이어 20대 국회 때도 발의됐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범죄에 악용될 우려가 있는 초소형 카메라를 팔거나 살 때 관할 지방경찰청장 또는 경찰서장의 허가를 받도록 한 규정이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11일 ‘몰카예방법’을 대표발의했다. 몰카 범죄에 형량의 2분의1을 가중하는 ‘상습범’ 조항을 마련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다.
정춘숙 민주당 의원은 “사회문제가 되면 관심을 두다가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지면 법안 처리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문제가 있다”며 “여전히 발의안은 계류 중이고 현재까지 이렇다 할 변화는 없지만 젠더폭력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관련 법안의 입법화도 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