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대책의 트리거(방아쇠)인 갭투자는 ‘부동산 불패’라는 오래된 학습효과가 만든 재테크 수단이다. 대기업 20년 차 직장인이 15년 동안 모은 목돈보다 서울 시내 아파트 가격이 더 많이 오르는 현실에서 갭투자는 적은 투자금으로 빠른 시간 동안 돈을 부풀릴 수 있는 수단으로 꼽혔다. 과잉유동성과 저금리에 투자처를 찾지 못한 돈들은 부동산시장으로 몰렸고 갭투자가 투기로 비난을 받았지만 일반 직장인들에게도 저금리 시대의 재테크 수단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갭투자는 비정상적인 시장교란 행위다. 공급이 정해진 상황에서 갭투자는 비정상적인 수요를 창출해 거래량을 늘리고 가격을 밀어 올렸다. 8·2부동산대책의 타깃 중 하나로 갭투자가 지목된 것은 시장의 정상화 측면으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부동산 가격 상승을 투기 탓으로만 돌려 수요를 옥죄는 것은 위험하다. 장난감의 가격이 오른다고 장난감을 하루에 10개만 살 수 있게 한다면 아이들은 부모를 조를 것이고 부모들은 웃돈을 주거나 다른 지역에 가서라도 장난감을 사야 한다. 투자든 투기든 심리게임이다. 저금리가 거품의 직접원인은 아니다. 비정상적인 시장교란까지 하며 아파트 가격을 올린 것은 누군가는 갭투자로 돈을 벌었고 앞으로도 돈을 벌 것이라는 기대감과 조급함이 만들어낸 결과다. 여기다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보였던 ‘신용 레버리지’가 일반인에게도 손쉽게 다가왔다. 기록적인 저금리는 ‘남의 돈은 공짜’라는 인식을 확산시켰고 남의 돈으로 안정적이고 수익이 나는 부동산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라고 부추겼다.
부동산대책은 돈의 흐름(심리)을 막는 것보다 돈의 물꼬를 터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1,022조원에 달하는 유동성을 풀어주고 문재인 정부가 강조했듯 생산적인 부문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줘야 한다. 부동산시장을 눌렀으니 당연히 돈이 주식시장이나 기업 투자 등으로 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는 아마추어적인 정책 판단일 뿐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 발표 이후 시중 유동자금이 지난 2005년 8·31부동산대책 이후 증시로 몰렸던 것과 같은 풍선효과를 기대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2005년의 상황과 현재 증시 상황은 다르다. 당시에는 국내 주식형 펀드에 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해 조그마한 불씨에도 불이 붙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하지만 최근 주식형 펀드는 원금 찾기에 바쁘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일부 정보기술(IT) 종목만으로 이끌어낸 상승세에서 수익률이 오른 펀드는 바로 환매로 이어진다. 아직 대세상승이라는 말을 붙이기는 이르다.
2005년과 또 다른 차이는 부동산보다 주식이 더 매력적이라는 것을 부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증시는 심리에 가장 민감한 투자다. 정부의 작은 배려(세제혜택 등)도 투자자들의 심리를 달아오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장 주식시장에 대한 세제혜택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세법개정안을 통해 대주주가 주식을 매각할 때 양도차익에 물리는 양도소득세율을 20%에서 25%로 인상할 것을 시사했다. 대주주 기준도 확대한다. 현행 대주주 기준은 코스피의 경우 지분율 1%, 보유액 25억원, 코스닥이 지분율 2%, 보유액 20억원이며 코넥스와 비상장은 각각 4%에 보유액 10억원, 25억원씩이다. 내년에 코스피의 경우 대주주 기준을 15억원으로 확대한다. 240만원대인 삼성전자 주식을 620주만 보유해도 대주주 기준에 따라 세금을 더 내야 한다. 이 기준은 오는 2021년까지 종목별 보유액이 3억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정부가 부동산 투기로 잡은 돈을 주식시장으로 돌려놓을 마음이 없나 보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투자 자금의 성격이 점점 달라지는 것도 풍선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한다. 일반인들에게 부동산은 저위험, 장기 고수익 상품인 반면 주식은 고위험, 장기 저수익 상품으로 인식돼 투자의 목적인 노후설계 등에 맞지 않은 상품으로 분류한다.
투기를 막았으면 투자는 풀어줘야 한다. 갭투자에 뛰어들려고 기웃대던 자금이 주식시장이나 회사채 시장으로 유입돼 생산적인 부문으로 흐를 수 있게 하려면 주식이 장기투자 상품으로 인식돼야 한다. 주식을 장기투자로 바꾸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위험을 덜어낼 수 있는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hsk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