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일 새 대북제재법을 시행하며 중국에 ‘세컨더리 보이콧(제3국 기관 제재)’을 부과할 법적 근거를 확보하자 지지부진하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새 대북제재 결의안 마련에 중국이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며 돌파구가 열렸다. 유엔 외교가에서는 조만간 15개 이사국들에 회람될 것으로 예상되는 새 대북제재 초안에 대북 석유 금수 조치의 수위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름이 명시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북한·이란과 함께 제재 패키지 법안에 포함돼 미국과 관계가 급격히 악화된 러시아가 새 결의안에 복병이 되고 있다는 관측이다.
외신들은 미국이 안보리의 추가 대북제재를 위한 새 결의문 초안을 중국을 포함한 안보리 15개 이사국과 조만간 협의해나갈 수 있다고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안보리의 결의안 처리는 통상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 5개국의 지지를 얻은 초안을 비상임이사국 10개국에 회람한 후 표결에 부치는 절차에 따라 진행된다. 안보리 이사국 전체가 협의에 들어간다는 것은 추가 대북제재 방안에 미중 간 입장이 근접했음을 시사한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새 대북 결의안에 대해 “유엔안보리의 대북 결의를 전면적이고 엄격하게 집행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안보리는 지난달 4일 북한의 1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발사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대북 제재 논의에 착수해 지금까지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주 북한이 또다시 ICBM급 미사일을 쏘자 중국·러시아에 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진 바 있다.
일각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연일 대북제재 강화를 요구하며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자 결국 중국이 움직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북한으로의 원유 유입을 차단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전방위 대북제재 법안에 서명하고 북측과 거래하는 외국 회사에도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한 바 있다. 중국은 북한에 연간 50만톤 이상의 원유를 공급해 북측이 원유 수입의 절반가량을 의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추가 제재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것은 미국이 안보리를 통한 대북 석유 금수 조치를 어느 정도까지 확대해나갈지다. 안보리는 현재 항공유에 대해서만 대북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아울러 북한의 외화 자금줄인 해외 노동자 송출을 최대한 억제하는 방안이 새 결의안에 포함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은 이 밖에 김정은 위원장의 실명을 안보리 제재 명단에 명시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만 중국이 미국과의 파국을 피하기 위해 추가 대북 제재에 한발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 반면 미국의 제재 확대에 직면한 러시아는 여전히 안보리의 새 결의안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 러시아가 추가 제재에 막판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바실리 네벤샤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는 이날 “아직 상임이사국 간 합의가 없다”며 추가 대북제재에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이에 따라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통화를 갖고 양국 간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한편 6∼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만나 북한 문제에 대한 의견 접근을 시도할 예정이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 노동자들을 많이 고용하고 있는 아세안 국가들에도 북측에 대한 비자 발급 제한이나 금지 등을 요구할 것으로 전해졌다. /뉴욕=손철특파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