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뒷북경제]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10년 전 ‘원교근공’과 앞으로의 ‘성동격서’

과거 본부장 시절, 예정된 일본과 FTA 미루고 미국부터 추진

일본과 중국 상대하기 위해 먼 곳에서 큰 시장부터 공략

동시다발적 FTA 추진하면서 상대국이 먼저 손 뻗게 만들기도

'성동격서'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 전략과 유사할 가능성

한미 FTA 개정협상 이외에 FTA로 다양한 카드 활용할 듯






노무현 대통령의 ‘자유무역협정(FTA) 가정교사’로 불리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당시는 외교부 소속)이 10년 만에 산업통상자원부 지붕 아래로 복귀했다. 김 본부장은 지난 4일 진행된 취임식에서 과거 통상정책과 전략에 대해서 ‘원교근공(遠交近攻·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한다)’이라고 평가했고, 앞으로는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 전략을 추진한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사실 그가 말한 과거 ‘원교근공’ 전략은 그가 직접 활용했던 전략이었다. 참여정부 시절 민간 출신으로 처음 통상교섭조정관(1급)으로 발탁돼 1년 만에 우리나라 대외통상정책의 총감독인 통상교섭본부장 자리에 오른 그는 취임 후 기존 정부 관료들의 통상 정책을 완전히 뒤집었다. 참여정부의 첫 FTA 상대국은 일본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그는 첫 상대국으로 미국을 지목한 것이다. 2003년 당시 한국이 유일하게 추진했던 FTA 협상 국가는 칠레 뿐이었던 시절. 김 본부장 스스로도 당시 한국은 ‘FTA 지각생·낙제생’이라고 평가했다. 미국과의 FTA는 누구도 생각하지도 않았었고 한·중·일 3국 또는 우리에 FTA 체결 요청을 하는 주변국들을 중심으로 상대국을 모색하던 때다. 물론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인식 자체도 없었다.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한다는 의미의 ‘원교근공’ 전략을 활용한 이유에 대해서는 그의 책 ‘김현종, 한미FTA를 말하다’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중국은 이미 시장이 크고, 일본은 원천기술이 우세하다. 그러나 우린 아직 세계 시장을 확실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패권을 잡는데 혈안이 된 일본과 중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먼 곳에서 큰 시장과 먼저 FTA를 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렇다면 그 상대는 미국이다! 일본이 아닌 것이다.”(홍성사, 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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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본부장은 먼저 제안하면 이익 균형의 추가 상대국 쪽으로 기운다는 협상 철칙를 잘 활용했다. 그래서 미국과의 FTA를 추진할 때도 바로 미국에 제안한 게 아니라 미국과 수출품목이 겹치는 멕시코, 캐나다 등과 먼저 접촉했다. 그러면서 아세안, 인도 등과도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추진하며 상대국을 긴장하게 했다. FTA를 원하는 국가에 먼저 FTA를 제안하는 게 아니라 상대국의 경쟁국과 FTA를 추진해 상대국을 먼저 움직이게 만드는 노련한 전략이다. 결국 한국과의 FTA에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던 미국은 먼저 한국에 FTA 예비협의를 하자고 제안하게 되고 주지하다시피 한미FTA는 체결된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4일 정부세종청사 대강당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산업통상자원부


그렇다면 그가 말한 앞으로의 통상전략의 키워드 ‘성동격서’는 무엇을 의미할까. 우선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통상 환경은 더욱 냉혹해졌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과거에는 “다 같이 잘 살아보자”는 인식이 강했다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하고서는 “나부터 살고 보자”며 자국의 이익 극대화에 집중하는 선진국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속마음을 모두 읽을 수는 없지만 성동격서 전략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적인 통상전략과 유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ㆍ나프타), 한미FTA 등을 골고루 언급하며 당사국들을 긴장하게 하고 실익을 취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는데 이는 성동격서라는 표현과 잘 맞아떨어진다. 산업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한미FTA 개정협상이 이슈인데 한미FTA만 가지고 전략을 짜는 게 아니라 여러 FTA를 두고 다양한 지렛대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해석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여러 카드를 꺼내놓고 실익을 취하는 것과 유사한 형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 ‘FTA 추진 로드맵’을 만들었던 김 본부장은 이러한 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통상 로드맵을 준비할 것이라는 점도 시사했다. 그는 취임식에서 “변화한 환경에 맞는 10년, 50년까지도 내다보는 통상전략과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통상전략으로 ‘성동격서’를 언급한 만큼 공격적이고 주도적이며 과거처럼 동시다발적일 가능성이 엿보인다.

새로운 통상교섭본부장의 취임에 산업부 직원들은 상당히 긴장한 모습이다. 취임식 때도 웃음기 하나 없이 직원들과 인사했고 “그동안의 수동적이고 수세적인 골키퍼 정신을 당장 버리라”고 주문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번 취임식에서도 직원들이 적어준 취임사는 거의 인용을 하지 않고 직접 써왔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 본부장의 의중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취임사에서 “법과 제도를 개편해 도시 자유무역구 대 도시 자유무역구의 FTA 수준에 버금가는 협상도 추진하겠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서는 산업부 내부에서도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의견이 분분하다는 후문이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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