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없이 움직이는 아주 작은 로봇이 있다면, 몸 속을 돌아다니면서 병든 곳을 고칠 수 있겠죠? 콜로이드 입자를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게 되면 가능해집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자연과학부의 스티브 그래닉 특훈교수가 최근 ‘집단으로 움직이는 능동 콜로이드 입자 연구’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이 내용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술지인 ‘케미컬 소사이어티 리뷰’ 최신호에 발표돼 관련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콜로이드는 우유나 잉크, 혈액, 안개, 마요네즈처럼 입자들이 용매 속에 균일하게 퍼져 떠다니는 상태의 혼합물을 말한다.
그래닉 교수는 “콜로이드 입자는 생명체를 이루는 최소 단위로, 우리 몸도 효소와 단백질 같은 무수한 콜로이드 입자가 이동하면서 작동한다”며 “이미 음식이나 공기 정화, 페인트 등 산업계에서 콜로이드 입자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부족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콜로이드 입자는 나노 입자보다 값싸기 때문에 충분히 연구되면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특히 자발적으로 추진력을 가지는 ‘능동 콜로이드 입자’는 별도의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아도 돼 잠재력이 크다. 몸 속에서 배터리 없이 움직이는 ‘미세로봇’이나 입자 표면에서 일어나는 화학 반응에서 동력을 얻는 합성 입자 등이 대표적이다. 작은 입자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능동 콜로이드 입자는 나노의학과 공학에서 유망기술로 꼽힌다. 특히 능동 콜로이드 입자가 집단으로 모이면 개별일 때와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규칙을 띠며 움직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 규칙이 왜 생기는 것인지는 아직 많이 밝혀지지 않았다.
그래닉 교수는 “능동 콜로이드 입자는 전기장이나 자기장, 열, 빛, 특정 물질의 농도 변화 등 환경적인 요소에서 에너지를 얻는다”며 “능동 콜로이드 입자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게 되면, 콜로이드 입자로 이뤄진 일상적 물질들의 성질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닉 교수팀도 2006년 ‘야누스 입자’라는 능동 콜로이드 입자를 만들어 흥미로운 현상을 밝혀내고 있다. 야누스 입자는 지름이 1㎛ 내외인 공 모양의 입자인데 표면의 절반만 특정 물질로 코팅시켰다. 그 덕분에 입자의 반쪽이 띠는 전기·화학적 특징이 다르다. 이 입자를 액체에 분산시킨 콜로이드에서는 다양한 행동을 관찰할 수 있다. 연구진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집단적인 콜로이드 입자의 움직임도 연구 중이다. 입자의 모양과 소재, 용매의 영향, 입자간 상호작용 등도 고려해 콜로이드 집단의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주목한 것이다. 그 결과 2016년에는 자기장 균형 깨짐이 능동 입자들을 재조립하는 현상을 밝혀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발표했다.
그래닉 교수는 “콜로이드 입자는 한두 개가 아니라 엄청 많기 때문에 실생활에서 콜로이드를 제대로 다루려면 집단 움직임을 알아야 한다”며 “마치 사람 한두 명을 안다고 사회나 국가를 파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능동 콜로이드의 ‘자발적 움직임’을 우리 삶에 가져오게 되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미래를 열어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