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보이는 굵직한 사업 재편이 진행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내부적으로 삼성만의 일사불란한 조직 문화가 사소한 것이라도 변한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 이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까지 초유의 ‘오너 없는’ 경영을 이어가고 있는 삼성 내부 곳곳에서 이 부회장 부재 장기화에 따른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당장 눈앞의 대규모 투자 결정 등 시급한 경영 현안이 무난하게 처리되는 듯하지만 삼성 계열사 전반의 ‘업무 긴장도’가 낮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일처리에서 삼성 특유의 긴장감·타이트함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게 내부 분위기”라면서 “오너 경영의 폐해라는 비판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가 삼성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단행됐어야 할 사장단 인사가 국정농단 사태에 엮이면서 이뤄지지 않은 데서 이런 분위기의 근본 원인을 찾기도 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윗선에서부터 인사가 제때 이뤄져야 조직 전체 인사가 원활하게 흐른다”면서 “최고경영자(CEO) 인사가 막혀 있으니 조직의 활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매 연말께 계열사 사장단 인사를 했지만 지난해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휘말리면서 사실상 무기한 연기됐다. 지난 5월에만 전자 등 일부 계열사가 임원 인사를 소폭 실시한 정도다.
상대 기업을 탐색하고 관계의 맺고 끊음이 숨 가쁘게 돌아가는 글로벌 산업 현장에서 삼성전자의 네트워크가 약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산업계의 글로벌 플레이어와 투자자들은 오너의 비전과 철학을 그 회사와 협력할지의 핵심 배경으로 삼고는 하는데 삼성은 지난해부터 투자자들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할 네트워크 구축이 전무하다.
이 부회장은 2011년부터 매년 7월이면 미국 투자사 앨런앤컴퍼니가 아이다호주에서 개최하는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해왔는데 올해는 참석하지 못했다. 전 세계 산업과 금융계 거물들이 참석해 이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 부회장은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 지주사인 엑소르 사외이사진에서도 4월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