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이름의 무게

조은정 한남대 교수

미술사학자 조은정


3751 W. 6th St. LA. 지난 2004년 6월26일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공공건물 명칭변경 법안에 서명함으로써 코리아타운 6가 하버드우체국에서 ‘도산안창호우체국’으로 명칭을 변경한 건물의 지번이다. 그런데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들의 사회 기여를 높이 평가하며 미주 한인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도산안창호우체국이라 명명한 이 건물은 그동안 끊임없이 존폐가 거론돼왔다. 우체국 건물이 부동산 개발사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우체국을 밀어낼 경우 단출한 건물이 있던 길모퉁이는 몇 년 내 10층짜리 주상복합 건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불빛으로 더욱 활기차질 것이다. 한인거주 지역의 경제에는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올 테지만 도산 안창호라는 이름의 우체국이 사라진다는 것은 무척이나 아쉬운 일이다. 그나마 북미 한인들의 독립운동 본산의 역할을 했던 대한민국국민회총회관 앞 ‘도산안창호광장’의 이름만은 그대로일 테니 다행이지 싶다.

어느 장소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그 시대나 사회의 가치를 드러낸다. 인사동이니 예장동이니 하는 이름에서는 인의예지신이라는 관념이 전통사회의 도덕과 규범을 좌우했음을 알 수 있다. 건물이나 도로 등에 사람의 이름을 붙였을 때는 인물에 대한 기념의 성격을 가지므로 그의 행적에 초점이 맞춰지기 마련이다.


국내에서 안 선생의 이름이 공공장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73년부터다. 1938년 일제의 고문에 의한 후유증을 안고 돌아가신 선생의 유해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치됐고 1962년에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이 추증됐다. 그리고는 1973년에 지금의 강남 지역, 당시 영동지구를 정비하면서 녹지를 갖춘 도산공원을 조성하고 선생의 유해를 이장해 부부합장으로 모시고는 이곳에 동상을 세웠다. 공원 안내판에는 “서울특별시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공원을 조성”했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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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제막식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양택식 서울시장을 비롯한 인사들이 참여했다. 동상을 제작한 작가는 김경승이었다. 당시 동상은 연미복을 입고 한 손을 위로 들고 두 다리마저 약간 벌린 채 연설하는 모습이어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이라고 한 게티즈버그의 에이브러햄 링컨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이 동상은 ‘부식과 안전 문제로’ 2003년에 철거되고 배를 앞으로 내밀고 뒷짐을 진 새로운 모습의 동상이 국가보훈처·강남구청·삼성전자의 협조로 설립됐다. 인물의 모습이 바뀐 것은 도산 선생에 대한 해석이 달라진 것일 게다.

무수한 독립투사와 애국자를 교육한 안 선생은 “나 하나를 건전한 인격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을 건전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했다. 재개발되는 도시의 건물과 공원·도로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이름자가 눈에 들어온다. 도산 선생의 이름이 붙은 장소들을 오가노라면 역사 앞에서 이름의 무게를 가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고는 한다.

조은정 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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