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성공 소식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겨냥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이례적인 경고 메시지를 던지면서 한반도를 무대로 한 북미 대립이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위험수역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의 북한 핵 보유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특유의 과격한 표현을 동원한 것으로 보이지만 군사조치를 강하게 시사한 미국 대통령의 공개 발언이 북한뿐 아니라 미 당국조차 돌이킬 수 없는 오판을 내릴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뉴저지주 골프리조트로 기자들을 불러 북한을 겨냥해 과격한 공개 경고에 나서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켰다. 세계 최강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의 대통령이 “지금껏 전 세계가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북한의 호전적이고 과장된 표현을 따라 한 데 대해 AP통신은 “역사상 유례가 없다”며 이러한 화법이 ‘서울 불바다’와 같은 북한의 과거 표현들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튿날 트위터를 통해 “미국의 핵무기 능력이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며 불시의 경우 핵 공격까지 단행할 수 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론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과격한 표현을 써가며 대북 군사조치 가능성을 공격적으로 언급한 것은 미 군당국이 북한의 핵탄두 소형화 기술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한 것을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한 데 따른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올 1월 북측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핵무기 개발이 최종 단계에 진입했다고 밝히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자신한 바 있다. 결국 ‘화염과 분노’ 발언은 내년 중 북한이 핵 탑재 ICBM을 실전 배치할 가능성이 고조되는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결코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자존심을 담은 한편 그만큼 미국 본토에 대한 북한의 위협이 커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은 아직 ICBM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기술만 확보한다면 북한 ICBM은 미국 안보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동북아시아 안보질서의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는 초조감이 묻어 있는 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 언어는 한반도 위기의 예측 불가능성을 증폭시키는 측면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정치 전문매체인 더힐은 “미국이 핵무기를 포함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데 진지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그의 극단적인 조치가 불안정한 지역 정세에 불을 붙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실무자인 렉스 틸러슨 미 국무부 장관은 9일 괌에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오판을 막기 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외교적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이 이해하는 언어로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편 북한과 미국의 설전이 한반도 안보질서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수위로 치달으면서 중국에서도 북미 간 군사적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 전문가인 장롄구이 중앙당교 교수도 싱가포르 연합조보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 개발 일정을 고집하면 미국은 북한 문제 해결 방안으로 무력행사 카드를 고려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날 북한이 탄도미사일 화성-12형으로 괌에 대한 공격작전을 할 수 있다고 발표한 데 주목하며 한반도 위기에 대한 경고음을 높였다.
북미 간 대화를 촉구하고 있는 중국은 서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며 한반도 비상사태에 대비하는 모습도 포착되고 있다. 중국 해군은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서해와 보하이에서 군함 수십 척을 동원한 실전훈련을 벌이고 있다. /뉴욕=손철특파원 베이징=홍병문특파원 hb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