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발행어음 인가심사 보류...삼성증권 '초대형 IB 꿈' 급제동

금융당국 "재판 대주주

실형땐 중대한 결격사유"

확정판결 때까지 중단 결정

"엄격한 심사 신호 보낸 것"

다른 신청사들도 촉각



금융당국이 삼성증권이 신청한 발행어음 인가 심사를 보류하겠다고 통보했다. 대주주인 삼성생명의 특수관계인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사 인가의 결격사유가 될 수 있다는 이유다.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전환하려는 삼성증권의 계획에 급제동이 걸렸다. ‘최순실 게이트’가 삼성 금융사업의 발목을 잡았다.

삼성증권은 10일 “대주주의 재판절차가 진행 중인 사유로 인해 심사가 보류된다고 금융당국으로부터 통보 받았다”며 “인가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은 향후 해당 재판 결과가 확정되면 관련 사항을 재공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9일 밤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로부터 발행어음 인가 심사를 위탁받아 심사를 진행하고 있는 금감원은 지난 7일 금융위에 ‘이 부회장에 대한 대주주 적격성 판단이 필요하다’는 협조 공문을 보냈다. 당일 박영수 특별검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 수백억원을 준 혐의 등으로 이 부회장에게 징역 12년이라는 중형을 구형했기 때문이다. 이후 금융위는 ‘심사를 보류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려 이틀 뒤인 9일 금감원에 통보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 대상인 이 부회장이 재판을 받고 있고 만일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수 있는 경우 중대한 결격사유가 될 가능성이 있어 심사를 보류해야 한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보류 기간은 이 부회장에 대한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다.

이 부회장은 삼성증권의 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삼성증권의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의 지분 0.06%를 보유한 특수관계인인 만큼 이 부회장이 삼성증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주주라는 것이 금융당국의 해석이다.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지분율 20.76%)이다.


발행어음 업무는 IB에 기업금융의 길을 터주는 것이어서 초대형 IB의 핵심이다. 자본이 풍부한 증권사들이 앞다퉈 초대형 IB에 도전장을 던지는 이유도 지금까지 은행이 쥐고 있던 기업금융의 주도권을 나눠 가지겠다는 의도 때문이다. 주식중개 수수료 중심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다. 특히 발행어음은 레버리지(신용)비율 산정에서 제외되며 시장성만 확보된다면 증권사의 주요 자금조달원으로 각광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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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번 심사 보류로 삼성증권의 초대형 IB 전환은 제동이 걸렸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법원 확정판결이 늦어질 경우 심사 재개는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만일 이 부회장이 1심에서라도 유죄 판결을 받는다면 심사 보류가 아니라 인가 자체가 거절될 가능성이 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자살보험금 미지급으로 기관경고를 받았지만 자회사의 본업과 연관성이 떨어지면 신규 업무를 인가 받는 데 예외조항으로 인정받을 것으로 기대했다”며 “정작 금융당국이 법 해석을 대주주(삼성생명)뿐만 아니라 대주주의 최대주주(이건희 회장)와 특수관계인(이재용 부회장)까지 범위를 넓혀 문제 삼을지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대우·NH투자증권·KB증권·한국투자증권 등 다른 신청사들도 금융당국의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주주 적격성 판단을 당국이 엄격하게 내리겠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KB증권은 기관경고나 기관주의 같은 제재 이력이 있으며 한국투자증권은 삼성증권과 마찬가지로 대주주 결격사유가 될 이력이 있다. 초대형 IB 인가 신청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자기 자본금 기준(4조원)까지 맞춰가며 준비했지만 헛수고를 한 건 아닌지 걱정”이라며 “정책 지원을 통해 모험자본을 육성한다는 당초 초대형 IB 취지도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심사 최종 결과는 10월께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엄격한 해석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또 다른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재판을 받는 것이나 삼성생명 지분 관계는 이미 다 알려진 상황인데 뒤늦게 이를 문제 삼는 것 아닌가”라며 “또 당국이 재판 결과를 예단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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