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바링허우] '헬차이나'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양칭샹 지음, 미래의창 펴냄

자본주의에 중독된 중국 청년들

물질·정신적 향유 추구하지만

'귀족-농민공'으로 계급화 진행

개천에서 용나기 꿈도 못꿔

대부분 비참한 흙수저 인생살이



2008년 중국에서 원촨(汶川) 대지진이 발생했다. 수많은 젊은이가 즉시 원촨으로 몰려갔다. 인민대학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저자 역시 원촨으로 달려가 자원봉사자들의 대열에 합류했다. 훗날 저자는 이날의 경험에 대해 “목숨을 잃은 수십만명의 사람들 앞에서 깊은 고뇌 없이, 고작 역사의 현장에 서 있고 싶어 했던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행동”이라 고백했다. 저자의 친구 역시 충동적으로 현장에 달려갔지만, 자원봉사 경험이 전혀 없다 보니 금세 세균에 감염, 구호 대상이 돼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황당하게도 저자의 친구는 수많은 사람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구조를 요청했고, 자신에게 제공되는 치료와 음식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았다. 당시 원촨의 참담한 비극을 마치 축제처럼 여겼던 철없는 젊은이들도 있었던 셈이다.

저자는 어떻게 재난이 축제로 왜곡됐나 질문한다. 그리고 그 답을 ‘허무주의’에서 찾는다. 개국초기인 50년대, 문화대혁명이라는 큰 파고가 휩쓸었던 60년대와 70년대랑은 달리, 80년대 이후의 역사적 사건들은 대부분 개인의 생활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때 태어난 바링허우(80后·80년 이후에 태어난 중국의 현 청년세대를 뜻함)에게 재난과 같은 ‘이벤트’들은 일시적으로나마 역사적 존재감을 찾게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깊이 중독돼버린 바링허우에게 사회주의국가 중국에서 일어나는 ‘이벤트’들은 혼란의 연속일 뿐이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점점 커지는 셈이다.

중국 상하이는 오늘날 여타 선진국의 대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그 과정에는 농민공의 희생이 있었고, 이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사진제공=미래의창중국 상하이는 오늘날 여타 선진국의 대도시를 능가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그 과정에는 농민공의 희생이 있었고, 이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사진제공=미래의창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바링허우의 삶을 편하게 해 주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바링허우의 이상향으로 ‘샤오즈(小資·서양의 사상과 생활을 지양하면서 내면의 체험과 물질적·정신적 향유를 추구하는 젊은 계층을 지칭)’의 삶을 꼽는다. 하지만 이미 자본으로 계급화가 진행 중인 현 중국에서는 이조차도 쉽지 않다. 30년간 형성된 취엔꾸이(권력을 바탕으로 사회 상층부를 장악한 신흥 귀족)는 수많은 ‘농민공’들과 구별되는 계급을 만들었다. 82년생 노동자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다”며 “집안에서 물려받은 것 없이 자신만의 능력으로 성공하는 일은 거의 없다”고 강조한다. 대학 시절 미국, 터키에서 국제회의에 참석하고, 영국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청년 역시 “중국에는 중산계급이 없다”며 “자신은 중산계급이 아니라 하층 사회에서 교육 정도가 가장 높은 계층일 뿐”이라고 말한다. 정신을 차려보니 삶아지고 있었던 끓는 물 속 개구리처럼, 바링허우는 서서히 질식 중이다.


책에서 나타나는 현실은 우리에게도 낯익다. 고유명사들을 제외하면 우리 사회의 이야기라도 믿을 정도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는 ‘헬조선’이라는 단어, 광장에서의 집회라는 방식을 통해 사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수라도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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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은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의 사망과 이에 대처하는 중국 당국의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 책 역시 그런 한계를 보여줬다. 현실에 대한 분노와 좌절은 담겨있지만, 분노의 화살이 향하는 방향은 애써 숨겼다. 중국의 젊은 지식인인 저자는 “한 세대 전체가 실패의 상황에 직면해있다면 이는 더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과연 누구의 문제인가”라는 당연한 후속 질문이 나올 만한데, 저자는 그러지 않았다. 고통받는 바링허우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만 할 뿐, 대안 제시는 외면한 부분이 이 책의 한계다. 1만4,000원

우영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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