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미국과 북한의 ‘강(强) 대 강(强)’ 대치 속에 나흘 연속 하락하며 2,320마저 붕괴됐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 고조로 외국인의 매물 폭탄이 쏟아져나오면서 코스피는 대세 상승장이 시작되기 이전 수준으로 후퇴했고 환율과 채권시장도 약세로 돌아섰다. 지난 8개월간 차곡차곡 쌓아올린 상승폭이 대북 리스크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리자 시장 일각에서는 외국인 의존도가 높은 대외변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국내 주식시장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자조 섞인 불만도 나온다. 시장 전문가들은 코스피가 8개월간 랠리를 이어오면서 피로감이 쌓인 만큼 당분간 조정이 불가피하겠지만 과거 북한의 미사일 도발 이후 시장이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걸린 시간을 고려하면 조정기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11일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1.79%(39.76포인트) 내린 2,319.71에 장을 마감했다. 이날 코스피는 외국인 매도에 1.54% 급락한 2,323.06으로 출발했다. 코스피가 개장과 동시에 1.5% 넘게 하락한 것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1.68% 하락 출발한 지난해 9월12일 이후 11개월 만이다. 지수는 북한 리스크에 일단 차익을 챙기려는 외국인의 매도세로 급격하게 미끄러졌다. 오후 들어 전일과 마찬가지로 금융투자와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저가 매수세 유입으로 낙폭을 만회하기는 했지만 정보기술(IT) 대형주 위주로 다시 순매도를 확대한 외국인의 매도 공세에 2,320선이 붕괴됐다. 코스피가 2,320선 아래로 내려간 것은 5월24일(2,317.34) 이후 두 달 반가량 만이다.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에 휩싸일 것”이라는 발언을 한 후 불과 나흘 만에 코스피는 두 달 전으로 돌아갔다.
시장에서는 최근 코스피 하락을 주도하고 있는 외국인의 매도 공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이 괌 포위사격의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밝히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이 더욱 고조돼 외국인들의 차익 실현 욕구를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5,872억원치의 주식을 순매도했는데 2015년 8월24일(-7,238억원) 이후 2년 만에 최대 수준이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의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지면서 원·달러 환율도 약세로 돌아섰다. 이날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원50전 오른 1,143원50전에 거래를 마쳤다. 8일 트럼프의 발언이 공개된 후 18원40전이나 뛰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북한과 미국의 강 대 강 대치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일부 외국인 자금의 차익 실현 압력이 더욱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외국인의 매도 확대와 환율 하락의 악순환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된다.
주요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코스피의 저점이 한 단계 내려갈 것이라는 회의론을 내놓고 있다. 김유겸 케이프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전쟁에 대한 우려가 깊어지면 2,300선이 깨져 손절매 성격의 투매가 나오고 낙폭이 훨씬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종우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식시장이 조정 국면에 들어간 상황에서는 약간의 충격만 발생해도 주가는 떨어진다”며 “오는 9~10월까지 조정 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시장의 흐름을 반영하듯 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상장지수펀드(ETF)의 수익률은 오르고 있다. 8일 대비 이날 종가 기준 ‘KODEX 인버스ETF’는 3.43% 올랐고 ‘TIGER 인버스 ETF’도 3.33% 상승했다.
하지만 올 들어 대북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코스피가 빠른 속도로 회복됐던 전례를 감안하면 조정기간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서울경제신문이 북한이 올 들어 감행한 12차례의 미사일 도발 가운데 증시가 열리지 않는 주말을 제외한 6차례의 코스피 등락률을 분석한 결과 코스피는 북한 미사일 도발일에 평균 0.15% 하락하는 데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코스피가 미사일 도발 당일 하락 마감했더라도 낙폭 회복에는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았다. 미사일 도발 직후 하락한 코스피가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는 평균 5.25거래일이 소요됐다.
외국인이 최근 쏟아내고 있는 매도 물량의 대부분이 고점 논란에 휩싸였던 IT주라는 점도 긍정적인 요인이다. 외국인은 지난달 24일부터 이날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3조2,950억원을 순매도했는데 전기전자 업종에서만 전체의 91.6%인 3조183억원을 팔아치웠다. 국내 시장 전체를 파는 것이 아니라 주가가 많이 오른 일부 업종에서 차익 실현을 확대하고 있다는 얘기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시장이 대북 리스크로 혼란스럽지만 7월 말 이후 외국인 매도 물량의 90% 이상이 IT 업종에 집중되고 있다”며 “같은 기간 금융·화학·철강 등 여타 업종은 순매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도 “9월까지 대외 이벤트가 많아 추가 하락 가능성도 있지만 IT 업종을 제외하면 코스피의 하락률은 크지 않다”며 “지나친 비관론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서민우·이경운기자 ingagh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