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경찰팀 24/7]취객 시비에 실종신고 해프닝까지...동 틀때까지 쉴틈 없어요

■'휴가 절정' 대천해수욕장 지구대 밤샘 동행취재

길안내 등 단순 민원업무부터

교통사고·폭행·실종·성범죄 등

하룻밤새 신고 70~80건 쏟아져

비상벨 오작동·허위제보도 많지만

중범죄 사건 가능성 무시 못해

출동 나설 때마다 긴장의 연속



여름휴가철의 절정을 맞은 지난 3일 해가 저물기 시작한 충남 보령시 대천해수욕장.

전국 각지에서 여름 바다를 즐기기 위해 대천해수욕장을 찾은 인파들이 하나둘 해변을 벗어나 인근 식당과 술집 등을 채우기 시작한다. 해변이나 술집마다 ‘즉석만남’을 즐기는 젊은이들의 얼굴에도 홍조가 떠올랐다.


그 시각 대천해수욕장지구대는 긴장감이 감돈다. 휴가를 맞아 일탈을 꿈꾸는 이들이 몰려든 만큼 ‘치안 지킴이’들이 출동할 일도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 나국주 대천해수욕장지구대 2팀장은 “해가 저물 무렵부터 경찰 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며 “여름 한창 휴가철엔 하룻밤 새 70~80건에 달하는 신고가 접수돼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오후11시. 길 찾아주고 분실물 신고까지 민원 해결사=“여기가 어딘지 모르겠어, 분명히 알던 데였는데.” 한 70대 노인이 지구대로 전화를 걸어와 도움을 요청했다. 술을 마셨는지 발음이 어눌하다. 그 사이 여성 두 명이 울상으로 지구대에 들어왔다. 근처 조개구이집에서 식사를 한 후 밖으로 나와보니 휴대폰이 없어졌다는 것. “비싼 휴대폰인데 찾아달라”고 애원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는 경찰은 머리만 긁적이며 진술서를 건넸다.

◇새벽1시. 비상벨 오작동·미니바이크 역주행…술이 오르는 시간=“지구대 앞 여자화장실에서 비상벨, 확인 부탁”. 조용하던 지구대에 무전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찰 2명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하지만 화장실 안에 있던 여성은 “잘못 눌렀다”며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출동한 경찰은 “비상벨 오작동은 하루에

도 2~3건씩 꼭 발생한다”며 허탈한 표정으로 웃었다.


오후11시40분, 지구대로 돌아온 경찰이 숨 돌릴 시간도 없이 또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한 40대 남성이 “미니바이크가 빠른 속도로 도로를 역주행해 아이가 크게 다칠 뻔했다”고 신고한 것. 곧장 순찰차를 타고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은 미니바이크 3~4대를 불러세웠다. “도로에서 역주행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지만 이들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휙 뒤돌아 미니바이크를 타고 가버렸다. 이날 새벽까지 미니바이크의 굉음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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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취객들의 시비와 교통사고, 잠들지 못하는 밤=새벽3시, 지구대 전화에 불이 났다. 택시를 탔던 손님이 휴대폰을 두고 내려 찾아줬더니 “약속했던 요금보다 비싸다”며 발뺌을 한다는 것. 경찰관 두 명이 나서 택시기사와 손님들을 중재했다. 나 팀장은 “지나가는 사람이 쳐다본다며 20~30명씩 패거리 싸움도 곧잘 생긴다”며 “여름 해변에서는 사소한 시비가 큰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벽4시께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한달음에 사고 현장인 시민탑 광장으로 출동했다. 경찰들은 본능적으로 큰 사고임을 직감한 듯 긴장돼 보였다. 차량 2대를 뒤에서 들이받은 피의자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반 넘게 움푹 꺼져 있었다. 피의자는 사고 직후 보험 서류와 블랙박스 메모리칩을 챙기고 사라져버렸다. 피서객 수십명이 현장에 몰려들었다. 현장에 있던 경찰은 “크고 작은 교통사고는 종종 있지만 이 정도 대형 사고는 드물다”며 현장 수습에 매달렸다.

◇새벽 5시. 잇단 성범죄·실종신고…‘강력범죄’ 위험 상승=새벽4시30분께 누군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었다. “한 남성이 미성년자 여성을 데리고 펜션으로 들어갔다”는 신고였다. 위치는 해수욕장 인근의 M펜션. 20개가 넘는 방을 일일이 열어보는 것은 아무리 경찰이라도 영업 방해다. 같은 펜션에 묵고 있는 제보자를 설득해 의심 가는 방 호수를 알아내 경찰관 2명과 함께 현장을 급습했다. 신분증을 확인해보니 여성의 나이는 23세. 최상훈(29) 경장은 “허위제보나 사실이 아닌 신고가 워낙 많아 힘만 빼는 경우가 많다”면서도 “그런 신고 중 강간과 준강간 등 중범죄 사건이 섞여 있어 제보가 올 때마다 매번 긴장하고 출동해야 한다”고 전했다.

새벽5시께에는 실종신고가 접수됐다. 함께 온 일행 중 3명이 이 시간까지 숙소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는 것. 경찰관 4명이 나서 새까만 어둠 속에서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했지만 허탕이었다. 3명의 일행과 마주친 곳은 일행이 묵고 있는 민박집 3층. 해수욕장에서 만난 남성들과 합석해 술을 마시던 중이었다. 자신들을 찾으려고 출동한 경찰 4명과 경찰차 2대를 본 일행은 창피함에 얼굴을 들지 못했다.

3일 오후6시부터 다음날 오전8시까지 대천해수욕장지구대에 접수된 신고는 20여건. 떠오르는 해에 경찰서 바깥이 조금씩 밝아질 즈음 경찰들도 한숨을 돌리며 쪽잠을 청했다. 책상 위에 엎드린 경찰들의 머리 위로 붉은색·파란색 글씨의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내 부모·형제처럼 모시겠습니다. 대천해수욕장지구대 직원 일동.’

/글·사진(대천)=박진용·신다은기자 yongs@sedaily.com

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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