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스타 영화

[SE★인터뷰]‘여자들’ 이상덕 감독, “시작하는 기로에 서있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와 제31회 후쿠오카아시아영화제 특별 초청작 ‘여자들’은 어떤 계절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여자들에게서 시작된 작가 ‘시형’의 특별한 이야기가 담긴 젊은 날의 썸데이 필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포함 총 6개 챕터로 구성, 계절에 따라 극이 진행되는 영화 ‘여자들’이 지난 3일 개봉했다.


본능적으로 ‘글을 쓰거나 춤을 추거나’ 하는 주인공 시형의 직업은 작가이다. 이상덕 감독은 시형의 시선을 통해 ‘왜’ ‘어떻게’ 라는 질문을 심지있게 끌고 나간다.

그렇기에 이상덕 감독은 “사실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이지만 중요한 요소는 아니다. ‘여자들’은 어떤 일을 시작하는 기로에 서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야기이다”고 말했다.

이상덕 감독 /사진=조은정 기자이상덕 감독 /사진=조은정 기자


◇ ‘왜 글을 쓰는가?’에서 시작된 고민



★ 영화 ‘여자들’은 주인공 시형(최시형)이 만나는 다양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각 챕터별로 이어진다. 이번 영화를 감독입장에서 설명하면?

▶ 과정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처음과 끝이 연결된 한 사이클에서 진행형인 과정을 보여주고 있어요. 이 영화에서 ‘시형’은 왜 자신이 글을 쓰는 건인가를 고민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인가를 생각해요. 그리고 우연적인 만남을 통해서 천천히 흐름이 생겨가고 그 일련의 과정들을 겪으면서 다시 글을 쓰고, 좀 더 해답을 찾아가요. 그렇다고 저희 영화가 답을 주진 않아요. 저 역시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 여름, 가을, 겨울, 봄 그리고 오키나와 속 다시 여름까지 4계절이 모두 담긴 영화다. 제작기간 8개월 동안, 한 달에 한 챕터식 촬영했다는 방식도 그런 ‘과정’을 보여주기 위함인가?

▶ 2015년 5월부터 시작해서 2016년 초에 끝났어요. 약 8개월간 계속된 프로젝트라면 프로젝트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극중에 나오는 시형 선배랑 이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이라, ‘시간은 있고 돈은 없지만, 우리가 재미있는 걸 해보자’란 말에서 시작됐어요. 처음엔 최종 결과물을 영화 형태로 생각한 게 아니어서, 제가 부지런하게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뒤 영화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한 달에 한편씩 찍어나가는 걸로 시작됐죠. 애초에 투자를 받고 하는 영화가 아니어서 더 자유스럽게 만들 수 있었어요. 또 내가 이런 영화를 언제 다시 한번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죠.

★ ‘여자들’은 멜로 영화인가. 청춘 영화인가. 아니면 작가에 대한 영화인가

▶ 표면적으론 남자 주인공이 계속 여자들과 만나는 이야기를 보여줘요. 중간 중간 만나게 되는 여자들만을 놓고 보면 각 챕터가 멜로 영화라고 볼 수 있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 지점은 아니었어요. 저희 영화는 시형에서 시작해서, 시형으로 마무리 돼요. 전체 영화를 놓고 보면 뭔가를 찾아가는 시형의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영화 ‘여자들’ 스틸영화 ‘여자들’ 스틸


영화 ‘여자들’ 스틸영화 ‘여자들’ 스틸


◇ 목적 없이 표류하는 과정...거기서 마주한 내 자신



★ 시나리오 집필은 어떤 아이디어부터 시작됐나

▶ ‘여자들’은 프리단계가 길지 않았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찍고, 바로 다음 챕터 시나리오를 써나가는 식으로 진행 됐어요. 애초에 ‘시형이란 인물이 누군가를 만나고 목적 없이 표류하는 과정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다.’란 한 문장에서 시작했어요. 그 한 문장에서 점점 가지 치듯이 시나리오를 써나갔죠.

★ ‘시형’이란 인물이 다소 소극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그럴 수 있지’란 공감이 생기기도 한다.

▶ 표면적으론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형’ 캐릭터에 대해 답답하다는 분들도 있지만 동시에 공감을 표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었어요. 분명한 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인물이란 것입니다.

남이니까 답답하다고 느낄 수 있어요. 실제로 자기가 그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해봐면 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은 행동을 할 확률이 커요. 게다가 우린 시형의 한 달 30일 중에 나머지 29일을 보여준게 아닌 시형의 하루만 보여줘요. 종합하면 8개월간 총 8번의 시형의 하루를 보여주고 있거든요. 누구한테나 그런 순간이 있잖아요. 관객들이 시형의 그런 순간 순간에 공감한다는 건 자기의 모습을 봤기 때문 아닐까요.

★ 시형이 머리를 자르는 장면에서도 시형이란 친구의 성격과 고민을 엿볼 수 있다.

▶ 시형이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하려고 마음을 먹고 머리도 자르고 다시 글을 쓰고자 해요. 미용실에서 요즘 유행 머리가 무엇이냐고 묻지만, 결국 자연스럽게 잘라달라고 해요. 거기서 느낄 수 있는 건 시형이는 새로운 유행도 궁금하고 뭔가 변화를 주고 싶지만, 결국엔 그렇게 하기엔 겁을 먼저 내는 친구인거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이 뚜렷하지 않다보니까. 고민하다 결국 상대방에게 맡기는 거죠.

또 다른 측면으로 머리를 자르는 장면은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어요. 실제로 책상에 있던 진짜 꽃이 시든 걸 보고 그대로 영화에 담아냈어요.

이상덕 감독 /사진=조은정 기자이상덕 감독 /사진=조은정 기자


◇ 한 줄의 진실을 위하여




★ 영화 속에선 ‘한 줄의 진실을 말하기 위해 100페이지의 분위기를 만든다’란 다자이 오사무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이 문장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도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관련기사



▶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말에서 따온 대사가 몇 개 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씨 말 속에서 인용 된 것들이 있고, 다자이 오사무의 말들도 있어요. 그 때 그 때 인용하고 싶은 것들을 대사로 인용했어요. 특히 소니란 캐릭터가 ‘누가 이랬대요’라고 하면서 유명 작가들의 말을 많이 인용하는데, 자기를 찾고 있는 과정 중인 캐릭터라 더 그런 대사를 많이 하는 걸로 그린 것 같아요.

★ 개인적으로 전소니 배우가 나오는 ‘이게 다예요’ 챕터가 끌리더라.

▶ 마지막이 좋아서, 다행입니다. 그래도 영화 티켓 값이 아깝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중간이 좋아버리면 큰일 날 뻔했어요. 하하. 마지막이 좋았다는 건 결국 그 동안 감정이 쌓였구나란 걸 느낄 수 있으니까요. 임팩트가 센 작품은 아니지만 80분간 쌓였던 게 의미 없지는 않았구나란 인상을 주니까요.

★ 시형의 고민이 결국 감독의 고민 아닐까? 란 생각이 든다.

▶ 어느 정도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태도가 비슷했어요. 시형이는 ‘왜 글을 써야 하는지?’란 고민이 많아요. 그 질문을 저에게 대입하자면, 난 영화가 너무 좋은데 ‘왜 하지?’ ‘왜 그냥 좋은 것 만으론 안될까’ 란 그런 고민의 지점이 비슷해요. 이런 고민은 영화든 글에만 국한 돼 있지 않아요. 모든 사람이 갖게 되는 고민이랑 비슷하죠. 시작하는 기로에 서있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이야기라고 정의할 수 있겠네요. ‘왜. 어떻게’란 고민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시형은 5명의 여자들을 만난다. 영화는 프롤로그 ‘낮은 여름이고 밤은 가을이다’(전여빈)를 시작으로 ‘풀코스와 디저트’(채서진), ‘물고기를 잡는 분위기’(요조), ‘아름다움의 취향’(유이든), ‘이게 다예요’(전소니) 그리고 에필로그 ‘오늘의 그는 어제와 다르다’까지 총 6개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여자들’이라는 제목이 최종 결정된 이유도 궁금하다.

▶처음엔 제목을 정하지 않고 시작했어요. 3개 챕터가 모였을 때부터 편집을 시작했어요. 그 당시 후보에 올라왔던 제목은 ‘춤’ ’나와 너‘ ’그녀들‘ ’시형‘ 등 되게 다양했어요. 사실 ‘여자들’의 영어 제목이 ‘Write or dance’인데, 이를 직역하면 ‘글을 쓰거나 춤을 추거나’입니다. 시형에게 춤은 본능적인 것에 가깝거든요. 그래서 ‘글을 쓰거나 춤을 추거나’란 제목으로 정하는 쪽으로 생각을 했는데, 영화 편집본을 보다보니 다른 패턴이 보였어요.

‘여자들‘이란 제목이 책 제목 같기도 하고, 별자리 제목 같기도 하잖아요. 처음엔 좋다고 의견이 모아졌는데, 나중엔 사회적 이슈도 떠올라 살짝 고민도 했는데, 저희 작품과 무난하게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제목으로 결정하게 됐어요.

이상덕 감독 /사진=조은정 기자이상덕 감독 /사진=조은정 기자


◇ 다시 만난 나에게...“좋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 십센치의 ‘그리워라’, ‘쓰담쓰담’, 서인국 ‘너라는 계절’, 매드클라운 ‘거짓말’‘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소유 & 백현 ‘비가 와’, 로이킴 ‘이기주의보’ 등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 감독의 꿈을 뮤직비디오 감독 활동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나

▶ 영화과 학생 시절부터 영화 현장에 나가서 많이 배웠어요. 단편영화와 독립영화 현장부터 시작해서 광고계에서 조감독으로 일했고, 뮤직 비디오를 “영화처럼 찍고 싶다”는 제안을 받아 만든 것이 뮤직 비디오 연출의 시작이었어요.

★ ‘여자들’ 속 스타일리쉬하고 감각적인 색감도 눈에 들어오더라. 스토리가 있는 컬러 색깔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낫겠다. 색감을 잡아가는 방식이 궁금하다.

▶ ‘여자들’ 의 전체적인 색감은 오렌지 컬러로 잡았어요. 작품을 만들기로 하면서 그게 제일 먼저 떠올랐어요. 상쾌하기도 하고, 주황색은 강렬한 빨간색도 아니라 설익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 색이잖아요.

시형이 입고 있는 의상을 주황으로 잡고, 그가 만나게 되는 인물들의 대비나 균형에 대해서도 생각했어요. 요조씨는 되게 어두운 검은색이나 ‘아무것도 몰라요’ 식의 흰색을 입고 나오기도 하죠.

영화 ‘여자들’ 스틸영화 ‘여자들’ 스틸


(소니가 입은 짙은 초록색 의상들도 색감이 예뻤다)시형이 오키나와에서 며칠을 보내면서 소니를 만나잖아요. 오키나와란 공간에 어울리는 색 그리고 여기 두 번째로 왔고 꽤 오랜 시간 이 곳에서 지내온 인물의 컬러는 어떤 게 좋을까를 고민하다 초록 색 쪽으로 결정을 했어요. 뮤직비디오든 영화든 중요 키 포인트 색깔을 정하고 가는 편이에요. 제가 특별히 색감에 조예가 있다기 보다는, 그렇게 해야 소품이나 그 외의 것들의 색깔을 정할 때 도움이 되거든요. 제가 속한 ‘콧수염필름즈’의 색깔을 최대한 녹이려고 하죠. 누구든지 다 찍을 수 있는거라면 굳이 저희가 안 찍어도 되는거니까요.

★ 87년생 젊은 감독이다. 이상덕만의 장점은 무엇인가?

▶음. 장점이라면 조금 정직하려고 하는 자세요. 모든 것에 있어서 너무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은 경계에서, 제 자신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스스로 난 어떤 사람인지? 란 질문을 하면 ‘정직’ 하고자 노력하는 그런 아이인 것 같아요.

★ 이상덕 감독의 이름을 들었을 때 ‘아’ 하고 바로 반응이 오는 날이 멀지 않았다.

▶ 좋은 질문을 던지는 감독이 되고자 해요. 우리가 노아 바움백(Noah Baumbach) 감독의 이름을 들으면 ‘아!’란 반응을 보이잖아요. 뭔가 그 분이 하는 영화가 일상에서 일어나는 흔한 이야기를 보여줘요.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근본적으로 삶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는 감독이죠. 그것도 위트 있게 하는 게 좋아요. 사람 자체가 그런 성향인 것 같아요. 너무 무겁지도 않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그런 경계에 있는 분이죠. 그 분의 ‘오징어와 고래’ ‘위아영’ ‘프란시스하’ ‘미스트리스 아메리카’등 모두 오랜 시간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제가 영화에 대해 바라고, 갖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동시대 감독 중 가장 영향을 받고 있는 감독입니다.

물론 에릭로메르 감독,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들도 좋아하고, 마블영화, 고전 영화 등 영화는 거의 다 빠지지 않고 보는 편입니다.

★ ‘여자들’도 좋은 질문을 던지고자 한 이상덕 감독의 의도가 읽혀졌다.

▶ 자연스럽게 그렇게 봐주시는 분이 있다면 감사하죠. 얼마 전에 영상자료원에서 저희 영화를 틀어서 그 자체로 엄청 뿌듯했어요. 또 모더레이터 조영갑 PD가 단점이 많지만 끌고가는 힘이 있는 영화라고 평해주셨어요. 그 말이 이 영화를 설명해주는 말이지 않을까? 싶어요. 단점이 있다는 걸 저 역시 알고 있어요. 긍정적으로 본 것, ‘내가 좋은 질문을 하려고 했나?’ 그게 잠깐이라도 보였다는 점입니다.

★ 첫 장편영화 개봉을 축하하고, 두 번째 장편 영화를 기대하고 있겠다.

▶ 밀도 있는 인터뷰를 하게 돼서 저 역시 좋습니다. 두번 째 영화 만들면 또 인터뷰 하고 싶습니다. 어찌됐든 첫 영화를 했는데, 작은 규모로 개봉도 하게 됐어요. 그것 자체가 기쁘거든요. 작은 규모의 영화들이 개봉하기가 쉽지 않는데, 개봉을 하고 관객들을 만나게 됐다는 사실 자체가 뿌듯해요. 되게 열심히 했고, 정직하게 하려고 했어요. 개봉 후 스코어도 중요하겠지만, 영화 카피처럼 관객들에게 근사한 우연이 됐으면 해요.

정다훈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