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집권 100일 계획 또는 일자리 100일 계획이라도 갖고 있었던 듯이 문재인 정부는 연일 메가톤급 정책 공약들을 모두 쏟아냈다. 취임과 동시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했고 11조원의 추경 편성과 공무원 추가 채용 방침을 일사천리로 처리해나갔다. 국책사업의 평가나 공공기관 평가에서도 일자리 창출을 주요 평가항목으로 추가했다. 최저임금도 노동계조차 깜짝 놀랄 수준으로 대폭 인상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큰 폭의 예산 지원도 서슴지 않고 약속했다. 지난주에는 의료보험의 보장성 강화와 각종 복지급여 확충 방안을 발표했다. 이 모든 것들이 좋은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대통령의 설명과 함께. 정부가 거침없이 예산을 쏟아부으며 일자리 창출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경제정책 기조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좋은 일자리는 소득주도 성장과 불평등 완화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는 킹핀의 위치에 있다. 좋은 일자리는 근로자의 임금소득을 증가시키고 빈곤을 감소시켜 소비를 촉진하고 성장률을 높인다는 것이 소득주도 성장론의 가설이다. 따라서 공무원 증원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위한 예산 투입,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재정 지원은 단순히 친노동 정책이 아니라 성장촉진 전략으로 이해된다. 고용과 복지를 위한 투자가 곧 성장 정책이기 때문에 정책 충돌이 일어날 수 없는 논리체계 속에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조치들은 정부의 명령 또는 예산 투입으로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신속하고 과감하게” 보일 수 있었지만 민간 부문의 좋은 일자리 창출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제까지 기업들은 관망 중이고 노사는 뒷전에 밀려 있다. 정부만 바쁜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 하더라도 주요 대기업들은 정부의 눈치만 살필 뿐 자발적인 해법 마련에는 소극적이다. 일부 대기업에서 총수의 결단으로 정규직 전환을 추진하지만 이런 약속은 기껏해야 5년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다. 기업들이 인사관리 전략을 바꾸고 임금체계를 개편해나가지 않는다면 비정규직은 또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몇몇 기업들이 변한다고 해서 될 문제도 아니다.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업종과 직업에 대한 시장조사를 통해 이들의 고용을 안정시키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관철될 수 있는 방안을 업계 공통으로 마련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는 좋은 사례가 노무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다. 비정규직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며 취임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4년 우선 공공기관 비정규직부터 없애겠다며 직접 나섰다.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또다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선언해야 하는 이유를 곱씹어봐야 한다.
비정규직이나 일자리 창출은 시장과 타협하고 노사가 직접 나서지 않고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책 당국은 이해해야 한다. 경영계의 노동 유연성 요구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수준에서 절충할 것인가를 노사 대표들과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그래서 민간기업에서도 통할 수 있는 비정규직 해법이 마련되지 않으면 이런 소동은 반복될 것이다. 경영계도 무조건 안 된다고 하거나 여기저기 눈치만 볼 것이 아니라 고용안정과 노동 유연성을 절충하는 대안을 갖고 적극적인 사회적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한국경총은 이 분야에 많은 정책적 경험을 갖고 있으면서도 정부와 회원사들의 사이에 끼어 정책적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노총을 비롯한 노동계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만 주장할 뿐 그에 따르는 비용의 분담과 직무 재편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최저임금의 대폭적 인상이나 근로시간 단축에 따르는 비용을 노사와 정부가 어떻게 분담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일자리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문제다.
단언컨대 일자리 대통령의 의지가 아무리 강하더라도 노사가 앞장서고 정부가 뒷받침하는 3자 협력체계가 함께 가동되지 않는다면 좋은 일자리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일자리 창출의 숨은 그림은 노사협력과 충분한 사회적 대화다.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전 노사정위원회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