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과 같던 정보기술(IT)주의 아성이 무너지면서 국내 증시에 외국인과 기관 등 주요 매수 주체의 매수 대상업종이 확대되고 있다. IT업종이 글로벌 IT섹터의 누적된 주가 상승 피로감과 북한 리스크 여파로 조정 국면에 들어가면서 시장은 새로운 주도주를 찾고 있다. 시장전문가들은 이익개선 대비 주가 상승 폭이 크지 않아 밸류에이션 부담이 낮고 인플레이션 흐름에 유리한 경기 민감주와 금융주가 IT 공백기에 적절한 대안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부터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IT 업종에 외국인의 순매도가 집중되며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외국인은 6월21일부터 8월11일까지 전기전자업종에서만 4조3,198억어치의 주식을 내다 팔았다. 같은 기간 외국인의 유가증권 시장 전체 순매도액(1조7,318억원)의 4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외국인의 순매도 상위종목 1위는 삼성전자(-2조5,114억원), 2위는 SK하이닉스(-1조970억원)였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과 북한의 “괌 포위 사격” 응수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된 9일부터 11일까지 사흘간 외국인은 1조669억원의 코스피 주식을 순매도했고 전기전자업종 주식은 이보다 많은 1조1,500억원어치를 내다 팔았다. 이 기간 동안 전기·전자업종지수는 1만7,333.59포인트에서 1만6,284.62포인트로 6.05% 급락하며 코스피 하락률(-1.60%)을 5배 이상 웃돌았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이번 증시 조정은 글로벌 IT섹터에 누적됐던 주가 상승의 피로감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외국인이 국내에서도 IT 비중을 축소하면서 발생한 것”이라며 “여기에 트럼프의 대북 강경 발언은 ‘울고 싶은 데 뺨을 때린 격’으로 외인의 차익 실현 욕구를 부채질했다”고 평가했다.
IT주의 독주체제가 깨지면서 새로운 주도주를 찾으려는 시장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물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으로 대변하는 IT섹터의 이익 개선세는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IT업종의 상승세가 외국인의 수급에 주로 의존해왔던 점을 고려하면 당분간 숨 고르기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시장전문가들은 경기 민감주를 IT 공백기를 메울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하고 있다. IT업종 대비 가격 상승이 덜해 밸류에이션 부담이 낮고 전후방 산업의 개선도 기대되기 때문이다. 같은 인플레이션 모멘텀을 따른다는 측면에서 금융업종도 긍정적이다. 최근 부동산 규제 이슈로 은행에 대한 우려가 나오지만 금리 인상 국면에서 전반적인 상승 기조를 훼손할 정도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서정훈 삼성증권 연구원은 “IT주를 제외하면 최근 이익개선 추세가 가장 뚜렷한 영역이 경기 민감주”라며 “최근 실물 수요에 기반한 원자재와 기초 소재가격 상승이 두드러지고 있고 경기 민감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도 호재”라고 설명했다. 박소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최근 대북 리스크에 가려졌지만 경기 관련 지표인 발틱건화물지수(BDI)와 철광석·구리·알루미늄 등 원자재 가격의 기대인플레이션이 매우 견고한 상황”이라며 “금리와 물가·경기회복에 대한 시장의 눈높이가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모멘텀을 팔고 인플레이션을 사는 방향으로 시장 환경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외국인의 수급 변화를 살펴보면 경기 민감주와 금융주가 코스피의 새로운 주도 업종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외국인은 6월21일부터 8월11일까지 IT주를 집중 매도하는 와중에서도 금융주는 1조7,011억원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철강·금속(6,489억원), 화학(4,391억원), 운수창고(2,251억원) 등 경기 민감업종에 대한 매수 비중도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