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 신발 주차장

강서연 作

1615A34 시




아파트 현관에는 시동 꺼진 신발들이 주차해 있다


가지런히 벗어놓은 신발들 사이

남편의 신발은 과적으로 차체가 기울어 있다

구조조정으로 고층 빌딩에서 추락한 이후

트럭 가득 과일을 싣고

좁은 골목을 누비고 다니는 남편의 타이거표 신발

세상을 향해 느리게 걸어가는 화살표 같다

‘과일 사세요’라는 말이 그렇게 부끄러웠다는 남편

외마디 소리에 통증이 섞여 나왔다

작은 흠집에도 쉽게 짓무르는 사과처럼


얼마나 더 깊이 도려내어야 신음이 노래가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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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늠할 수조차 없이 막막하던 때가 있었다

무수한 울음이 촘촘하게 박음질 된 송아지 가죽 신발은 내 것이다

결혼기념일 날 남편에게 선물 받은 최신형 중형 세단

몇 해 전 유방암으로 왼쪽 가슴을 도려내고부터

삶이 한쪽으로만 쏠리는 나를 간신히 싣고 다니는 자동차

동창회나 계모임에만 끌고 다녀서 그런지 입만 열면 허세 일색이다

밤마다 집안으로 따라 들어온 길들이 모여 있는 우리 집 현관에는

기울어진 남편의 신발과 내 신발

그리고 그 기울기를 고여 주는 아이들의 신발이 주차해 있다

어두운 밤에도 길을 잃지 말라고

서로를 향해 이정표가 되어주는 나침반들이 살고 있다

살아온 자취를 이력이라 하지 않는가? 신발은 삶의 블랙박스이자 알리바이다. 환한 대로도 걷지만, 어두운 뒷골목도 걸었으리. 뚜벅뚜벅 당당하기도 했지만 비칠비칠 흔들리기도 했으리. 덩실 어깨춤을 싣기도 했지만 돌부리와 깡통을 걷어차기도 했으리. 저마다 기울고 쏠리는데도 서로를 향해 이정표와 나침반이 되어주는 아프고도 따뜻한 가족 주차장이 현관마다 있구나.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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