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의 창업자인 이해진 전 의장이 지난 14일 공정거래위원회를 직접 방문해 네이버를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총수 없는 대기업’은 지금껏 KT와 포스코 등 공기업 태생의 회사가 주로 지정됐고, 네이버처럼 창업주 겸 오너가 명확한 민간 기업이 포함되는 사례는 드물어 논란이 예상된다.
15일 IT(정보기술) 업계와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전 의장은 네이버의 박상진 최고재무책임자, 정연아 법무담당이사 함께 14일 오후 공정위 기업집단과를 찾아 담당 과장을 만난 데 이어 신동권 사무처장, 김상조 위원장과 면담했다.
기업집단과는 ‘공시대상 기업집단’의 지정·관리를 맡는 부서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은 매년 자산 5조원 이상의 준(準) 대기업을 뽑아 ‘일감 몰아주기 금지’ 등 규제를 하는 제도로 다음 달 첫 지정 업체가 결정된다.
네이버는 작년 자산 기준으로 5조원에 가까스로 못 미쳤지만 이번에는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
공시대상 기업집단이 되면 ‘동일인’(총수)을 지정해 공정위에 신고해야 한다. ‘동일인’은 회사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오너로, 허위 자료 제출 등 회사의 잘못에 대해 본인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이 전 의장은 기업집단과장과 만나 “네이버의 동일인을 개인이 아닌 네이버 법인으로 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네이버에서 현재 이 전 의장의 지분은 4%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네이버의 대주주인 국민연금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실제 회사를 지배한다고 보기 어렵고, 이 전 의장이 네이버의 사업 방향과 인사에 관해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만큼 유력한 총수 후보가 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의장은 자신이 ‘글로벌 투자 책임자’ 역할만 맡고 있고 네이버 법인이 70여개 자회사를 직접 경영하는 만큼 ‘총수 없는 기업’으로 지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는 이와 관련해 “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사안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정리해 16일 오전께 발표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 전 의장이 김 위원장을 면담한 자리에서는 공정위 사안에 대해 따로 얘기하지 않았고 격의 없는 환담만 했다”고 전했다.
이 전 의장의 요청을 공정위가 수용할지는 아직 불명확하다. ‘총수 없는 기업’ 지정은 주로 포스코와 KT&G 등 원래 오너가 없던 기업이나 채권단이 최대 주주인 회사가 대상이었다.
또 이 전 의장이 네이버 고위 관계자를 데리고 자기 업무와 무관한 공정위를 찾아 김 위원장까지 만난 사실 자체가 그가 회사 실세라는 것을 방증한다는 지적도 만만찮아 ‘특혜 요구’ 논란이 생길 수도 있다.
이 전 의장은 올해 3월 네이버 의장에서 물러나면서 국내 사업 현안은 모두 변대규 현 의장과 한성숙 대표이사에 맡긴 상태로, 공적으로는 공정위 문제에 관여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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