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살충제 계란 파문] ①무항생제 인증권한 민간기관에 맡겨...'친환경 마크' 남발 자초

구멍 난 '먹거리 안전망' 4가지 문제점

② 농민 반발에...식약처, 위탁만 하고 관리 손놔

③ 알고도 독성 살충제 쓴 농민들 '모럴해저드'

④ 시민단체 경고했지만 귀닫은 정부 안일 대응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내 계란 살충제 검출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국내 계란 살충제 검출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로 이원화된 관리체계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인 지난 2012년만 해도 우유 함량이 많은 아이스크림은 농식품부가, 그렇지 않은 아이스크림은 식약처(당시 식약청)가 맡는 식으로 모든 식품의 감독권이 나뉘어 있을 정도였다. 박근혜 정부 들어 이를 일원화했지만 제도가 불안정했다. 축산물 생산단계의 안전관리를 농식품부가 위탁받아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면서 불씨가 남았다. 그 불씨가 이번에 살충제 계란 사태로 다시 드러난 것이다. 이원화된 안전관리 구조를 비롯해 살충제 사태가 커지게 된 네 가지 요인을 짚어본다.

①구멍 뚫린 친환경 인증제도


16일 추가로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전남 나주의 한 산란계 농가에서 생산된 계란에서는 허용기준치(0.01㎎/㎏)의 21배에 달하는 살충제(비펜트린)가 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농가는 친환경 축산물 인증 가운데 무항생제 인증을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이번에 ‘살충제 계란’이 검출된 6개 농장 중 5개 농장이 친환경인증 업체로 밝혀지면서 정부의 친환경 인증제도의 허술함이 드러나고 있다.

친환경 인증이 점점 민간 인증기관에 이양되는 방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민간 인증기관들은 농가를 대상으로 친환경 인증을 많이 부여할수록 수익이 올라가는 구조이기 때문에 친환경 인증을 남발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이번에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가에 무항생제 인증을 준 민간 인증기관이 과거에 부실인증으로 적발된 적이 있는 업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A4용지 한 장 크기의 철제 우리(케이지)에서 키운 닭이 낳은 계란에 대해서도 친환경 인증을 줄 수 있는 현행 제도도 문제다. 이 같은 열악한 환경에 고온현상까지 지속되면서 최근 들어 닭 진드기 발생이 늘자 살충제 사용이 늘어난 것이다.

②농식품부·식약처 이원화된 관리체계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식품관리 일원화 대책의 일환으로 축산물 위생관리법의 소관부처가 농식품부에서 식약처로 바뀌었다. 하지만 농식품부와 농민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생산단계에 대한 안전관리는 식약처가 농식품부에 위탁할 수 있도록 체계를 바꿨다. 결국 계란 등 축산물의 생산 과정은 농식품부가, 유통 과정은 식약처가 안전관리를 책임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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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적인 업무 집행을 위해 역할을 분담했다고 볼 수 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다. 지난해 9월과 10월, 그리고 올해 3~5월 산란계 농가에 대한 농약검사도 농식품부가 조사 계획을 세우고 시행한 뒤 식약처에 결과만 통보했다. 전문가들은 농림축산업 진흥 업무를 맡고 있는 농식품부가 생산단계의 안전관리를 함께하다 보니 현장조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식품안전 분야의 한 전문가는 “농식품부가 생산단계의 안전관리를 전담하다 보니 처음부터 전수조사를 하지 않고 시설이 잘돼 있는 대형 농가 위주로만 샘플링 조사를 해 중소형 농가의 문제를 잡아내기 어려워 문제가 확산된 것”이라며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선진국들은 소비자 중심으로 식품안전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식품산업 진흥체계와 안전관리체계를 철저히 구분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과 제도를 담당하고 있는 식약처도 농식품부에 위탁만 하고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③알고도 독성 살충제 쓴 농민들의 ‘모럴해저드’

농가의 ‘모럴 해저드’도 여전했다. 농장주들은 소비자들의 건강을 우려해 살충제 등의 사용을 꼼꼼히 따져야 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적발되면 모르쇠로 일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살충제 계란’이 처음으로 검출된 남양주의 농장주 역시 “옆 농가에서 진드기 박멸 효능이 좋다는 소리를 듣고 사용했다. 피프로닐인 줄은 몰랐다”고 진술했다. 좁은 케이지 안에 산란 닭을 몰아서 키우면서 환경 개선은 제대로 하지 않고 농약에만 의존한 것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방역 당국이 농가의 신고와 양심에만 기댄 현행 체계로는 비슷한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비양심적인 농가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 법상 유독·유해 물질이 들어 있거나 우려가 있는 축산물을 판매하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이 가능하다. 다만 고의성이 없는 경우 처벌 수위는 크게 낮아진다.

④귀 닫은 정부 안일한 대응 매뉴얼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국회 보건복지위 소속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살충제 계란 문제를 언급하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당시 손문기 식약처장은 “계란 안전관리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상위 부서인 농림식품부의 실태조사는 상위 부서인 농림식품부와 함께해야 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후 식약처와 농식품부 모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올해 4월에 이미 일명 ‘살충제 계란’이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한 시민단체를 통해 알려졌지만 정부는 이를 묵살했다. 16일 한국소비자연맹이 재공개한 ‘유통 달걀 농약 관리 방안 토론회’ 발표자료에는 유통 중인 계란 51점 중 2점에서 농약 잔류허용기준을 초과한 농약이 검출됐다고 적시돼 있다. 1점의 경우 피프로닐이, 다른 1점의 경우 비펜트린이 잔류허용기준을 초과해 검출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정부는 소비자연맹의 조사 결과를 묵살하다가 올해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문이 이어지자 8월 들어 조사에 착수했다.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세종=강광우기자 김경미기자 pressk@sedaily.com

강광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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