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인우월주의에서 비롯된 미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유혈사태에 대해 양비론적 입장을 고수하자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일으킨 온갖 논란에도 우군을 자처해온 기업인들이 결국 그의 곁을 떠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는 일부 기업이 소비자불매운동의 타깃이 될 조짐을 보이자 대통령 주변에 머물며 정책적 이익을 누리는 득(得)보다 인종주의적 대통령에 대한 지지로 초래될 소비자의 외면과 평판 악화의 리스크가 더 크다고 계산한 것이다. 게다가 급격한 여론악화로 여당인 공화당 지도부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군 고위층에서도 인종주의 비난 성명이 줄을 이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고립무원의 늪에 더욱 깊이 빠져드는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오후 트위터를 통해 “제조업자문위원단(AMC)과 전략정책포럼(SPF)의 기업 경영인들에게 압력을 가하느니 둘 다 활동을 중단하겠다. 모두 고마웠다!”고 밝혔다. 대통령이 샬러츠빌 유혈사태의 책임을 두고 양비론을 펴며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인 후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의 자문단 사퇴가 이어지고 남은 기업인들이 해산 결의를 한 것으로 알려지자 결국 스스로 자문단체 2곳을 해체하기로 한 것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이탈한 CEO들을 겨냥해 “대체할 사람은 많다”며 자신만만한 태도를 보인 것과는 사뭇 다른 결정이다.
CEO들의 자문단 탈퇴는 지난 14일 다국적 제약회사 머크의 케네스 프레이저 회장이 포문을 연 후 래리 핑크 블랙록 회장, 제프리 이멀트 제너럴일렉트릭(GE) 회장 등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대표 기업인으로 꼽혀온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마저 이날 임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샬러츠빌 사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인종주의·불관용·폭력은 언제나 옳지 않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뉴욕타임스(NYT)는 과거 일부 기업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정책과 파리기후협정 탈퇴 등 논란이 많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반대의사를 나타낸 적은 있지만 샬러츠빌 사태는 심각성이 더하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다수 경영자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경영에 악재가 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LA타임스도 “기업 CEO들의 경제자문단 탈퇴 러시는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를 둬 경영환경이 악화하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샬러츠빌 사태 초기만 해도 AMC에 남으려던 데니스 모리슨 캠밸수프 CEO가 각종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수프 나치’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등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움직임이 일자 백기를 든 것이 단적인 사례다. 일부 매체들은 “기업가치에 대해 중요성을 부여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행동주의적 성향으로 변하는 기업가들도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정치권에서도 고조되고 있다. 조지 H W 부시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자는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미국은 언제나 인종편견과 반유대주의, 모든 형태의 증오를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화당 안에서도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은 “미국인을 치유하는 게 아니라 분열시키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정면 겨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