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화학업계가 올 들어 역대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연구·개발(R&D)에는 여전히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 집약적인 장치 산업의 특징상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해도 R&D를 전반적으로 끌어올려야 글로벌 경쟁력 제고가 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업계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극히 일부를 제외한 상당수 석유화학 업체들의 올 상반기 매출액 대비 기술개발비 비중은 1% 안팎에 불과했다. 국내 석유화학 ‘빅3’ 중에서는 LG화학이 기술개발비 비중이 가장 높았다. LG화학은 올 상반기 4,375억원을 기술개발에 투입해 매출액 대비 기술개발비 비중이 3.4%를 기록했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은 0.57%(445억원)에 불과했고, 한화케미칼도 1.3%(252억원)에 그쳐 국내 대기업 평균 기술개발비 비중(1.4%)보다 낮았다.
상대적으로 특수 제품을 생산하는 화학업체들이 범용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보다 기술개발비중이 높았다. 바이오 의약품과 그린케미칼 제품을 주로 생산하는 SK케미칼의 연구개발비 비중은 4.53%로 최고 수준이었으며, PET 필름·반도체 소재·마스크 팩 소재 등을 생산하는 SKC는 2.44%, 아라미드 등 산업용 섬유를 생산하는 코오롱인더스트리도 1.99%로 전반적으로 높았다. 화학업계 관계자는 “납사분해시설(NCC)를 운영하는 석유화학업체들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장치 산업”이라며 “그러다 보니 스페셜티 제품을 생산하는 화학 기업보다 연구개발 비중이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정유사들은 화학업체보다 연구개발비 비중이 더 낮았다. 올해 상반기 매출액 대비 기술개발비 비중이 대부분 0.1% 안팎에 불과했다. 바이오부탄올 등 신재생에너지 연구를 진행하는 GS칼텍스가 연구개발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매출액의 0.19%(256억원)를 연구개발비로 사용했고 S-OIL은 68억원(0.07%), 현대오일뱅크 21억원(0.03%)을 기술연구에 투입했다. 국내 최대 정유사인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상대적으로 연구개발비 비중이 높아 881억원(0.4%)를 기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정유 산업은 기술보다는 자본 집약적인 장치산업”이라며 “이 때문에 첨단 신기술이 필요한 반도체 등과는 달리 생산 설비에 투자하고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해 연구개발 비중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치 산업의 특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국내 정유·화학업체들의 연구개발비중은 글로벌 기업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일례로 세계적인 정유업체인 엑손모빌(ExxonMovile)의 경우 지난해 말 기준 매출액 대비 기술개발비 비중이 0.67% 정도였으며, 세브런(chevron)은 0.93% 정도다. 화학 기업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바스프(3.8%), 미국의 다우케미컬(3.3%), 일본의 미쓰이(2.3%) 등은 대부분 국내 기업보다 높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구개발비 비중이 낮은 것은 맞지만, 기업이 처한 상황이 모두 다른 만큼 단순히 외국 기업과 비교할 수는 없다”며 “예전보다는 연구개발비중이 서서히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