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치명적 매력의 무희 떨쳐내고 恨 맺힌 소리꾼으로 돌아왔어요"

[뮤지컬 서편제 '송화'로 다시 무대서는 차지연]

뮤지컬 '마타하리' 폐막 한 달만에

내 운명 같은 서편제 '송화'로 변신

자신의 길 찾는 단단한 인물 선뵐 것

오프브로드웨이 무대도 서고 싶어

뮤지컬 ‘서편제’에서 한 맺힌 소리꾼 ‘송화’ 역을 맡은 배우 차지연이 16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은석기자뮤지컬 ‘서편제’에서 한 맺힌 소리꾼 ‘송화’ 역을 맡은 배우 차지연이 16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 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송은석기자


아무리 배우라는 직업이 새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마치 흰 도화지가 된 듯 매번 새 그림을 그려내야 하는 직업이라지만 이건 좀 심한 것도 같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스파이 혐의로 처형된, 치명적인 매력의 무희 ‘마타하리’와 득음을 위해 자신의 눈을 멀게 한 아비를 떠나지 못하는 한 맺힌 소리꾼 ‘송화’. 두 인물이 한 명의 배우 속에 살아 숨 쉬는 것이 가능할까. 뮤지컬 ‘마타하리’ 폐막 한 달 만에 마타하리에서 ‘서편제’의 ‘송화’로 변신하는 뮤지컬 배우 차지연에게 떨어진 과제가 이렇듯 가혹하다.

16일 서울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차지연은 “‘마타하리’ 무대에서 내려온 이후로는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더 깊고 충실하게 송화를 보여줄 수 있을지 끊임 없이 고민하고 있다”며 “유럽에 가 있던 영혼을 이제 막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차지연은 2010년 초연부터 빼놓지 않고 ‘서편제’ 무대에 올랐다. ‘송화’ 역의 다른 두 배우(이자람, 이소연)와 달리 판소리를 업으로 삼은 소리꾼은 아니지만 타악을 전공해 우리 소리를 잘 이해하고 있는데다 목소리에 드라마가 느껴지는 차지연 특유의 음색과 깊이가 서편제와 잘 어울렸기에 매번 캐스팅 1순위로 꼽힌 것이다. 차지연은 “국악을 전공한 뮤지컬 배우가 드물다 보니 초연에 참가하게 됐고 그 이후로 네 번의 공연 모두 송화 역을 맡아 무대에 섰다”며 “서편제는 나와 운명처럼 이어진 작품인 만큼 여건이 허락하는 한 10년이든 20년이든 매번 함께하고 싶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번 무대에서 차지연이 선보일 ‘송화’는 지금까지와는 결이 다르다. 차지연은 “지금까지의 송화는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고 늘 피해자의 관점으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며 “이번 무대에서 보여줄 송화는 강단 있게 자신의 소리길을 찾아가는 단단한 인물이 될 것”이라며 웃었다. ‘아이다’의 ‘아이다’, ‘드림걸즈’의 ‘에피’, ‘위키드’의 ‘엘파바’처럼 주체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여성 캐릭터를 주로 소화해온 그답게 슬픔을 속으로 삭이면서 성장해가는 송화가 전보다 더 와 닿는단다.

“1막의 송화가 아직 어리고 여물지 못한 소녀라면 2막의 송화는 예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거예요. 연기도 발성도 다르게 해서 관객들이 송화의 성장을 감지할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예요.”


2015년 4세 연하의 뮤지컬 배우 윤은채와 결혼한 차지연은 지난해 11월 아들을 출산했다. 출산 8개월만에 ‘마타하리’로 복귀하고 곧바로 ‘서편제’ 무대까지 이어가며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지만 “엄마가 되고 나니 더 힘이 나고 무엇이든 잘 할 수 있다는 용기도 생겼다”며 씩씩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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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이 엄마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행복해요. 아이 덕분에 작품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서편제에선 초반에 지전이 열리면서 어린 송화와 동호가 걸어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이 그렇게 마음 아픈 장면인지 이번에야 알게 됐어요.”

‘마타하리’의 대본을 쓴 작가 아이반 멘첼이 2014년 뮤지컬 ‘서편제’을 보고 차지연의 연기에 감동받아 “전 세계에서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여배우를 한 명 꼽는다면 바로 차지연”이라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옥주현의 존재감이 큰 ‘마타하리’ 무대에 도전하게 된 것 역시 멘첼의 권유 탓이었다. 그리고 실제 지난 7월 ‘마타하리’ 앙코르 공연에서 차지연은 출산 후 반 년만에 무대로 돌아온 한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치명적인 매력 속에 슬픔을 간직한 마타하리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지칠 법도 하지만 차지연은 늘 도전을 꿈꾸느라 지칠 겨를이 없다.

“하던 것만 하면 싱겁고 재미없지 않나요. 저는 작품도 캐릭터도 저를 마음껏 괴롭혀주는 게 좋아요. 헤드윅 같은 남자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습도 보여드리고 싶고 연극 무대도 꿈꾸고 있어요.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오프브로드웨이의 20-30석 소극장 무대라도 서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직은 성장하고 깨져야 할 시기니까요.”

11월 5일까지 광림아트센터 BBCH홀

서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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