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편의점 인간’의 주인공은 18년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는 36세의 ‘모태솔로’ 여성 후루쿠라 게이코다. 후루쿠라는 아침에 편의점 빵을, 점심에는 주먹밥과 패스트푸드를 먹는다. 밤에도 편의점 음식을 집에 싸들고 와 저녁을 해결하는 편의점에 최적화된 사람이다. 날마다 계산기를 두드리다 보니 꿈 속에서도 “어서 오십시오”라고 외치지만 그나마 편의점 근무라도 하기에 세상의 한 부분으로 산다는 위안도 얻는다.
편의점 인간은 우리나라에서도 더 이상 소설에 나오는 특이한 얘기가 아니다.
한국편의점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6년만 해도 9,928개에 불과하던 국내 프랜차이즈 편의점 수는 10년 만인 지난해 3만개를 돌파했다. 올해는 7월 말 기준 3만7,536개까지 폭증했다. 우리나라 인구를 5,125만명으로 볼 때 1,365명당 편의점이 하나씩 있는 셈이다. 이는 2,226명당 편의점이 하나씩 있는 일본(3월 말 기준 5만6,160개)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다.
편의점은 이제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무엇보다 바쁜 직장인을 비롯해 비혼·졸혼·이혼으로 홀로 된 사람, 독거노인, 생활비가 부족한 자취생과 초중고교 학생 등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편의점 도시락으로 자주 끼니를 때우는 ‘편도족’이 VIP로 부상했을 정도다.
점포 수가 늘어나는 만큼 편의점 상품·서비스의 양과 질도 발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편의점 업계의 전체 매출 신장률은 2014년 8.3%, 2015년 26.6%에 이어 지난해 18.1%를 기록해 1.4%, 0.8%씩 역신장한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을 비롯해 백화점(3.3%), 소셜커머스(13.5%), 종합유통몰(10.9%) 등 대다수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을 압도했다.
서비스 부문에서도 당일택배는 물론 세탁, 항공권 발권, 라커, 카셰어링, 전기차충전소 등 편의점은 이제 그야말로 혼자 사는 사람들의 원스톱 서비스센터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세븐일레븐의 무인편의점, CU의 인공지능(AI) 도우미 등 첨단기술까지 도입되는 추세다.
편의점이 한국 사회에서 주목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른 퇴직, 고령화, 취업난, 낮은 혼인율, 저출산, 맞벌이 등 2017년 대한민국이 품은 온갖 사회현실이 그대로 투영됐다는 점이다. 편의점은 미국에서 먼저 발전해 1982년 11월 롯데쇼핑(023530)이 ‘롯데세븐’을 세우면서 국내에도 도입됐다. 당시만 해도 외벌이 4인 가구가 기본이었던데다 장을 보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과도 맞지 않아 2년도 못 채운 1984년 4월 사업을 접어야 했다.
편의점은 1989년 세븐일레븐이 들어오고 LG25(현 GS25), 훼미리마트(현 CU), 미니스톱 등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부활한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는 큰 변곡점이었다.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쏟아져 나온 명예퇴직자들이 앞다퉈 점주로 변신하면서 2000년대 초부터 고도성장의 서막을 쓰기 시작한 것. 모두가 괴로웠던 외환위기가 역으로 성장의 기틀이 된 편의점은 2010년대 들어 전통가족이 해체되고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완전히 날개를 달았다.
여기에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 은퇴기를 맞으면서 한 달에 155만원이라도 벌기 위해 퇴직금을 모두 투자하는 점주가 줄을 이었다. 취업난이 가중되면서 부모 도움으로 편의점 운영을 사회의 첫 경험으로 삼는 젊은이와 시간당 6,470원의 최저임금에도 알바를 마다하지 않는 이른바 ‘편돌이’도 ‘편의점공화국’을 지탱하는 근원이 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편의점에 종사하는 사람은 2013년 9만4,735명에서 2015년 11만6,978명으로 2년 새 2만명 이상 늘었다.
이준영 상명대 소비자주거학과 교수는 “최근의 1~2인 가구 증가는 장기적인 거대 트렌드이기 때문에 편의점은 당분간 오프라인 채널 중 가장 많이 성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양적성장뿐 아니라 일본의 노인 서비스 같은 편의점의 질적성장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