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청춘드라마의 역사는 학원물의 대표 브랜드 ‘학교’부터 시작한다. 1999년 첫 방송된 ‘학교’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본격 청소년 드라마로, 입시, 학교폭력, 이성문제 등 당시 학생들의 고민을 현실적으로 풀어내 신선함과 함께 호평을 받았다.
이후 2002년 시즌 4까지 분기별 바통을 이어받으며 장혁, 김규리, 양동근, 배두나, 최강희, 김래원, 김민희, 이요원, 하지원, 조인성, 임수정 등 청춘스타를 배출해낸 ‘학교’는 ‘스타등용문’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네 번째 시즌에 이르러 점차 화제성 부진에 처하자 2013년까지 오랜 기간 공백의 시간을 가졌다.
청소년드라마 시리즈는 ‘반올림’에서도 이어졌다. ‘학교’ 시리즈가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렸다면, 2003년 ‘성장드라마 반올림# 1’은 중학생들이 주인공이었다. 주인공 옥림이 역으로 고아라가 나서 솔직하고 유쾌 발랄한 15세 소녀를 인상적으로 연기했다. 유아인, 김정민, 오연서의 풋풋한 시절도 묻어난 작품. 중학생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반올림’은 2005년과 2006년에 걸쳐 시즌 3까지 방영했다.
이후엔 2009년 ‘꽃보다 남자’가 대한민국과 아시아권에 큰 이슈몰이를 했다. 동명의 일본 만화 ‘꽃보다 남자’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한국판에서 사립고에 다니게 된 세탁소집 딸과 부잣집 도련님들의 사랑을 그렸다. 만화적 색채가 강한 작위적인 설정, 구혜선의 연기력 논란, 어설픈 CG 탓에 각종 뭇매를 맞기도 했지만, 흥미로운 F4 캐릭터는 화제를 이끌어 각종 패러디물을 낳았다.
특히 구준표 역의 이민호는 데뷔 후 몇 년간의 무명 시절을 끝내고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이민호가 한류스타 대열에 합류할 수 있던 이유 역시 ‘꽃보다 남자’ 때문이다. 당시 함께 출연했던 김현중, 김범, 김준, 한채영, 이시영, 김소은, 김현주, 이민정 역시 주목을 받았다.
시청률 30%(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이하 동일)에 육박한 ‘꽃보다 남자’의 성공으로 KBS표 청춘드라마 제작은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았다. 2010년 방영한 ‘공부의 신’ 역시 ‘꽃보다 남자’처럼 일본의 ‘드래곤 사쿠라’를 원작으로 한 작품. 유승호, 고아성, 이현우, 지연을 중심으로 문제아들이 명문대에 들어가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담았다.
같은 해 ‘성균관 스캔들’은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었다. 청춘스타 박유천, 박민영, 송중기, 유아인으로 이뤄진 라인업은 당시 그 자체로도 뜨거운 관심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이후 ‘구르미 그린 달빛’ ‘화랑’의 모태가 된다.
2011년 ‘드림하이’는 ‘연예인’을 꿈꾸는 현 시대 청소년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드라마였다. 연예예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스타가 되고픈 청소년들의 꿈과 사랑을 그렸다. 김수현, 배용준, 엄기준을 비롯 수지, 택연, 은정, 우영, 아이유, JOO까지 상당수의 출연진을 가수로 삼아 파격적인 시도를 했다.
다음해 ‘드림하이 2’에서는 강소라, 박서준, 김수현을 포함해 정진운, 지연, 효린, 에일리, 가희, JB, 진영, 예은, 아이유, 수지가 출연했다. 특히 영어선생 역의 박진영은 두 번의 시즌 모두에 출연해 출연 자체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2013년에는 ‘학교 4’이후 10년 만에 부활한 ‘학교 2013’이 시리즈의 명맥을 이었다. 장나라, 최다니엘, 이종석, 박세영, 류효영, 김우빈이 주역으로 출연해, 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들을 그렸다. 역대 최고의 청춘 드라마로 손꼽히며 학원물의 한계를 넘은 수작이라 평가된 ‘학교 2013’은 학생뿐만 아니라 학부모, 교사 등 학교를 둘러싼 모든 관계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이었다. 이종석과 김우빈의 진한 우정과 ‘남남케미’가 돋보였다.
‘꽃보다 남자’ ‘공부의 신’에 이어 일본의 ‘노다메 칸타빌레’를 원작으로 한 ‘내일도 칸타빌레’는 2014년을 뜨겁게 달궜다가 금세 차갑게 식어버린 비운의 드라마였다. 클래식에 대한 꿈을 키워가며 열정을 불태우는 열혈 청춘들의 사랑과 성장 이야기로, 주원, 심은경, 백윤식, 예지원, 고경표, 박보검, 도희가 출연했다.
‘한국판 노다메’는 누가 될 것인지 캐스팅부터 초미의 관심사였지만, 주인공 심은경의 연기는 일본판 우에노 쥬리와 비교되면서 한국 현실과 다른 오버된 연기로 평가받았다. 전체적 연출과 캐릭터까지 한국 정서와는 맞지 않다는 반응이었다.
2015년에는 3편의 청춘물이 탄생했지만 그만큼 시행착오도 극심했다. ‘후아유 – 학교 2015’는 ‘후아유’라는 제목을 앞세워 색다른 변화를 시도했다. 김소현이 쌍둥이 자매 은비와 은별로 1인 2역을 맡아 남주혁, 육성재와 풋풋한 로맨스를 펼쳤다. 학교 내 왕따문제를 겪는 여고생의 풍부한 감수성을 기존의 ‘학교’ 시리즈와는 또 다른 초점으로 녹여냈다.
여진구, 설현, 이종현을 중심으로 한 ‘오렌지 마말레이드’는 뱀파이어와 인간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한 감성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를 추구했지만,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2%대의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설현과 여진구의 ‘목키스신’만 이슈로 남겼을 뿐이었다.
이어 KBS는 ‘발칙하게 고고’로 발칙하고 유쾌한 반격을 꿈꿨지만 3%의 시청률로 또 한 번 굴욕을 안았다. 고등학교 내 두 동아리의 통폐합이라는 해프닝을 통해 위선과 부조리로 가득한 학교 안의 풍경을 그렸지만, 기존 학원물의 정형화된 틀 안에서 이렇다 할 시선끌이는 하지 못했다. 정은지, 이원근, 채수빈, 엔, 지수의 밝고 건강한 매력만 보였다.
2016년 ‘무림학교’는 무협학원물이라는 또 다른 변주였다. 취업과 스펙 쌓기가 아닌 정직, 신의, 생존, 희생, 소통, 관계 등 사회에 나가 세상에 맞설 수 있는 덕목을 배우는 무림캠퍼스에서 벌어지는 20대 청춘들의 액션 로맨스. 신현준, 이현우, 서예지, 홍빈, 정유진, 이범수, 신성우, 간미연 등 다양한 출연진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설정으로 시청률 저조와 함께 20부작에서 16부작으로 축소해 종영했다.
하지만 그 해 ‘구르미 그린 달빛’의 성공으로 굴욕은 씻을 수 있었다. 츤데레 왕세자 이영과 남장 내시 홍라온의 예측불허 궁중위장 로맨스 ‘구르미 그린 달빛’은 ‘보검매직’의 효과를 톡톡히 누리며 지난해 청춘물로써는 최고의 신드롬을 자랑했다. 박보검, 김유정을 비롯해 진영, 채수빈, 곽동연, 정혜성의 활약으로 최고시청률 23.3%까지 치솟았다.
올해 ‘화랑’은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에 이은 성공적인 청춘사극을 목표로 했지만, 13.1%의 최고시청률을 기록한 후 7.9%로 뚝 떨어져 초라하게 퇴장했다. 박서준, 김지원, 안재홍, 송하윤 주연의 ‘쌈, 마이웨이’는 올 상반기 KBS 효자노릇을 한 작품이다. 남들이 뭐라던 ‘마이웨이’를 가려는 마이너리그 청춘들의 골 때리는 성장로맨스 ‘쌈, 마이웨이’는 당초 ‘사이다 청춘물’이라는 콘셉트로 주인공들의 거침없는 입담, 스펙 위주의 세상을 향한 일침, 공감 가는 일상과 애정문제를 적절히 조합해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13.8%로 자체최고시청률을 경신,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어 방영한 ‘학교 2017’은 여전히 시대착오적 연출과 작위적 설정으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세정, 김정현, 장동윤, 설인아, 박세완, 서지훈, 로운, 김희찬 등의 신예들이 손색없는 열연을 펼침에도 과거 학교 풍경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들, 비상식적인 인격모독 등이 몰입을 방해한다는 반응이 잇따르며 과거 ‘학교’ 시리즈의 현실적인 웰메이드성과 비교되고 있다.
유호진PD와 라준모PD(차태현)가 야심차게 도전한 예능드라마 ‘최고의 한방’도 5%대로 시청률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윤시윤, 이세영, 김민재, 동현배를 중심으로 타임슬립을 결합하며 시대를 넘어서도 변치 않을 청춘의 가치를 전했지만 밤 11시라는 시간대의 한계, 동시간대 경쟁 프로그램 tvN ‘프로듀스 101’의 폭발적인 인기에 맥을 추지 못했다.
시청률 4%대에 머물고 있는 ‘학교 2017’과 함께 이제 막 방영을 시작한 ‘맨홀-이상한 나라의 필’은 2.0%로 시청률이 맨홀에 빠졌다는 질타를 받고 있다. 주인공이 일주일 뒤 예고된 짝사랑의 결혼을 막기 위해 타임슬립하며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은 ‘맨홀’은 김재중의 ‘원맨쇼’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산만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유이, 정혜성, 바로와 함께 ‘쌈마이웨이’를 잇는 유쾌한 청춘물로 심폐소생에 성공할지 앞으로 지켜볼 부분이다.
청춘물의 명가 KBS의 2017 성적표를 아직 속단하긴 힘들다. 금토드라마임에도 희망적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최강 배달꾼’이 효자로 점쳐지고 있다. 짜장면 배달부인 주인공을 중심으로 대한민국 흙수저의 사랑과 성공을 그리는 ‘최강 배달꾼’ 또한 ‘쌈마이웨이’와 같은 유쾌, 통쾌함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구태의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초반의 우려와는 달리 고경표, 채수빈, 김선호, 고원희 등의 안정적인 연기력과 케미, 매끄러운 상황 전개가 점차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4회 만에 6.5%로 자체최고시청률을 경신했다.
‘학교 2017’ 종영 이후 오는 9월에는 8부작 ‘란제리 소녀시대’가 방송을 앞두고 있다. 김용희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해 1970년대 후반 대구를 배경으로 소녀들의 성장통과 사랑을 그린다. 시대적 배경에 따라 보다 폭넓은 시청층이 예상된다. 도희, 채서진, 우주소녀 보나, 서영주, 씨엔블루 이종현, 여회현이 출연을 확정지었다.
‘란제리 소녀시대’까지 올해로 총 7편의 청춘물을 선보이는 KBS. 약 20년간 꾸준한 제작으로 세대를 아우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청춘물’도 다양한 변주를 꾀할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하는 중. 각종 시행착오를 거친 KBS의 시청률, 화제성, 작품성 모두 사로잡기 위한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