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운용사 펀드들이 최근 코스닥 종목을 집중 매수하며 중소형주 반등의 서막을 알리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대형주 쏠림 현상이 글로벌 정보기술(IT)주 조정과 북핵 위기 등 대외 이벤트에 완화되면서 주식형 펀드들이 그동안 소외됐던 중소형주를 담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말 위탁운용사의 벤치마크(BM) 복제율 가이드라인을 폐지한 것도 중소형주가 활기를 띠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자산운용사의 수급을 보여주는 투신은 지난 7일부터 전날까지 코스닥 시장에서 11거래일 연속 순매수를 기록했다. 이 기간 투신의 누적 순매수액은 951억원으로 기관 전체 순매수액(1,158억원)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투신이 11거래일 연속 코스닥 주식을 순매수한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미국과 북한 간 긴장 고조로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기가 재부각되며 대형주가 조정받기 시작하자 투신은 코스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투신은 코스닥 대장주 셀트리온(068270)을 228억원어치 순매수한 것을 비롯해 파라다이스(034230)(126억원), SK머티리얼즈(036490)(95억원), 서울반도체(046890)(85억원), CJ오쇼핑(035760)(72억원), 주성엔지니어링(036930)(66억원), 이녹스첨단소재(58억원) 등을 가장 많이 편입했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이나 특정 업종에 편중되지 않고 실적 대비 주가가 저평가된 종목들을 다양하게 담았다. 투신이 코스닥 종목을 순환매하면서 코스닥 지수는 대외 변수에도 불구하고 640선을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투신의 귀환이 반가운 것은 그동안 투신의 순매도가 중소형주의 약세를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투신은 국민연금이 지난해 6월 국내 주식위탁운용사들에 BM 복제율을 제시하며 대형주 비중을 높이라고 압박한 후 코스닥 주식을 지속적으로 덜어 내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5월 중소·벤처기업 정책 기대감에 순매수를 보이기도 했지만 6월 들어 다시 순매도로 전환했다. 투신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7월 말까지 내다 판 코스닥 주식은 1조7,027억원어치로 기관투자가 가운데 기타법인(-2조5,252억원) 다음으로 크다. 개인과 더불어 코스닥의 주요 수급 주체인 투신이 연일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이 기간 코스닥은 700.03포인트에서 650.47포인트로 7.08% 하락했다.
시장에서는 투신의 순매수 확대 기조를 중소형주 반등의 신호로 해석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22일 기준 코스닥의 주가수익비율(PER)은 31.23배로 지난해 말 연초(40.56배) 대비 여전히 낮다. 지난해 말 국민연금이 논란이 됐던 복제율 가이드라인을 폐지한 것도 시차를 두고 서서히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6월 이후 1년 넘게 중소형주가 조정을 거쳤고 가이드라인도 폐지되면서 중소형주 펀드매니저들의 보폭도 넓어졌다”며 “대외 변수에 대형주가 흔들리면서 명분상으로도 중소형주를 늘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