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여명] 미래세대의 '단물'을 빠는 사회

최형욱 디지털미디어부장

내수 부양·복지 확충 등 빌미로

매 정부마다 미래세대 희생 요구

구멍난 재원은 결국 빚으로 남아

복지 누린만큼 현 세대 책임져야

특파원 칼럼용 사진-최형욱 뉴욕특파원




“그래도 선배님은 먹고살 걱정은 없었잖아요. 저는 몇 대 얻어맞더라도 취업만 원하는 데 갔으면 좋겠어요.”


이른바 ‘민주화 세대’인 선배 지인 한 명은 대학을 졸업한 지 30년 정도 만에 모교에서 강연 기회를 가졌다. 뒤풀이로 호프집에서 새카만 후배들과 마주 앉았다. 후배들은 대기업 임원인 그에게 취업정보를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는 숫기가 없어 보이는 후배들에게 ‘꼰대질’을 해댔다.

“‘헬조선’ ‘N포세대’ ‘이생망’ 등등 자조하는 이유는 다 이해한다. 하지만 사회 탓만 한다고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 청춘일수록 도전의식을 가져야지.” 후배들이 다소곳이 듣고 있자 그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무용담으로 덧칠했다. “우리 때는 더 힘들었다. 지금은 학교 안에서 백골단(사복경찰)한테 얻어터지고 데모하다가 구속되고 그러지는 않잖아.”

마침내 후배들은 볼멘소리를 해댔다. “선배님 세대는 선택지라도 있었잖아요. 체제 저항을 하다가도 마음만 먹으면 사회에 편입될 수도 있고. 저희는 아예 사회가 벼랑 끝으로 밀어내는 것 같아요. 저희는 연금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고도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을 수 있고요.”


그는 그제야 ‘베이비부머’들이 ‘단물 세대’라고 불리는 이유를 되돌아봤다고 한다. 실제 386세대는 생존 경쟁이 지금만큼 치열하지는 않았다. 대학에서 막걸리나 마시고 사회과학서적 몇 권 읽으며 ‘고뇌하는 청춘’ 흉내를 2~3년 하다 보면 웬만한 대기업은 골라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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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는 고도성장의 단물을 빠는 차원을 넘어 기득권 장벽을 쌓으며 질 낮은 일자리만 물려주는 등 청년층의 꿈마저 앗아갔다. 그 중심에 역대 정권들이 있었다. 김대중 정부가 내수 부양이라는 명목 아래 대학생에게까지 신용카드를 남발하는 바람에 수많은 젊은이들이 신용 불량의 구렁텅이에 빠졌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에 부동산 거품은 한껏 부풀어 올랐고 청년층의 내 집 마련의 꿈은 사라졌다. 취업난·주거난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가 급기야 출산 파업에 들어가며 출생아 수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추락했다.

미래 세대의 희생을 요구하기는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는 집권 5년간 178조원의 재정이 소요되는 공약을 발표한 데 이어 이미 아동수당 신설, 기초연금 인상,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에 83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반면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거둬들일 세수는 27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돈은 세출 구조조정과 초과 세수로 충당하겠다지만 증세 논란을 회피하기 위한 빈말에 불과하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마저 “세출 구조조정은 쉽지 않다”고 인정할 정도다. 구멍 난 재원은 적자 국채 발행, 즉 미래 세대의 빚으로 메워야 한다. 기성세대가 누린 복지부담을 미래 세대에 떠넘기는 꼴이다.

5년 후를 생각하지 않는 ‘욜로(You Only Live Once·YOLO)’ 정부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는 또 있다. 새 정부는 공무원 17만4,000명을 대거 채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막대한 재원 마련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5년 뒤에는 ‘공무원 채용절벽’이 현실화될 게 뻔하다. 학교 기간제 교사들의 정규직화를 놓고 전국 교대생들이 집단 반발하는 사태를 두고 ‘집단 이기주의’라고 폄하할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증세 문제에 대해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현재의 증세 방향이 ‘국민 편 가르기’로 진행되고 기업 활력을 저해할 것이라는 일각의 비판은 둘째 문제다. ‘중부담·중복지’ 공약을 실현하고 싶다면 보편적 증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국민적 동의를 구해야 한다.

한국의 미래 복지모델이 미국식인지 유럽 대륙식인지 북유럽식인지 아직 국민 간 의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복지를 누린 정도만큼의 책임은 현세대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 증세는 없다”고 눈 가리고 아웅할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모습은 ‘증세 없는 복지’를 외쳤던 박근혜 정부 초반을 연상하게 한다. 언제까지 젊은 층의 기회를 박탈하는 차원을 넘어 그들의 미래 소득마저 빼앗을 셈인가. /choihuk@sedaily.com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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