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4일 필리핀에서 한국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전모(42)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필리핀에서 미결 상태로 구금된 5년의 기간을 국내 형량에 포함시켜 달라”는 전씨의 주장을 기각하고,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미결구금이 자유 박탈이라는 효과 면에서 형의 집행과 일부 유사하다는 점만을 근거로, 단지 미결구금되었다가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의 미결구금일수를 형법 제7조에 의해 국내에서 같은 행위로 선고받는 형에 산입해야 한다는 것은 허용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씨는 2005년 필리핀에서 함께 관광가이드로 일하던 피해자 지모(당시 29세)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현지 경찰에 체포돼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하지만 5년 뒤인 2010년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됐다. 이후 지난해 5월 전씨가 귀국하자 검찰은 그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은 “필리핀 정착에 도움을 준 피해자를 살해해 죄질이 나쁘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하지만 1심 이후 헌법재판소가 외국에서 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집행 받은 경우 국내 재판에서 재판부의 재량에 따라 구금된 일수 만큼 형량을 줄일 수 있다는 형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재판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국회도 지난해 12월 재량 규정이 아닌 반드시 형량을 구금 일수 만큼 줄이도록 형법 7조를 개정했다.
이에 전씨는 개정된 형법 7조가 자신에게도 적용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은 “개정 형법은 외국에서 형이 집행된 경우에만 적용되고 구속됐다 무죄로 풀려난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대법원도 이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