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방송되는 KBS1 ‘KBS스페셜’에서는 ‘전쟁과 여성 3부 - 전쟁과 여성’ 편이 전파를 탄다.
1945년 일본의 패전 후, 한·일 양국에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한다. 전쟁으로 파괴된 터전. 그 때 생겨난 미군부대 주변 상권은 인근 주민들의 주 수입원이 됐다. 이곳에 먹고 살기위해 모여든 여성들이 있다. 미군장교의 집안일을 도왔던 여성부터 부대인근에서 성매매를 했던 여성들까지. ‘달러’로 생존한 할머니들의 전후 생존기를 전한다.
▲ 1952년의 고아 소녀. 미군을 상대로 매춘하기 위해 거리에 나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거주하는 피자 크림션(85). 그녀는 한국인이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하녀로 떠돌던 그녀는 혈혈단신으로 한국전쟁을 맞닥뜨린다. 10만 피난민 행렬 속에 그녀도 있었다. 그리고 전쟁의 혼란 속에서 매춘으로 내몰렸다. 엉겁결에 떠밀린 길거리에서 참전미군 프랭크를 만난다. 프랭크는 그녀를 향해 구애하지만, 일방적으로 이용당할 것이 두려워 그로부터 도망쳤다. 프랭크는 온 마을 사람들을 동원해 피자를 찾아냈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이었지만, 한국전쟁 기간 미군과 한국여성의 결혼은 법적으로 금기시 되었다. 프랭크는 10개월간 노력 끝에 결혼 이민을 허가받는다. 하녀 생활을 전전했던 피자 할머니는 1954년 미국 땅을 밟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더 전쟁 같은 나날을 보내야했다. 그녀의 삶은 전쟁 전과 후, 그리고 60년 동안 묵혀둔 상자를 열어본 그날 전과 이후로 나뉜다.
▲ 1945년, 미군 장교 가정부로 취직하다
가데카루 아케미 할머니(85)는 팔순이 넘어서야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1945년 오키나와에서 벌어졌던 미군과의 지상전 당시 12세. 공부해야 할 나이에 전쟁에 동원되어 방공호를 파고 피난 다녀야만 했다. 전쟁 통에 부상 입은 아버지와 동생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머니를 대신해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그 시기 여성들이 생계 수단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은 넓지 않았다. 나이를 속이고 취업한 미군기지. 10대의 나이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았지만 식구들을 홀로 먹여 살리기에 풍족하지 않았다. 그 무렵 가난한 딸들을 사고파는 일이 흔치 않게 발생했다고 한다. 그들이 팔려간 곳은 미군을 상대하는 매춘 업소. 여성을 물색하던 장사꾼은 가데카루의 아버지에게도 딸을 팔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는데, 그날 이후 그녀의 삶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 1960년대, ‘양공주’ ‘양색시’로 손가락질 받다
1950년대, 일본에 이어 일본에 이어 한국에도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한다. 미군기지 인근 부락은 기지촌으로 불렸고 이곳에서는 미군을 상대로 한 성매매가 이뤄졌다. 빈곤 때문에 다른 생존 수단을 찾고 있던 여성들이 기지촌으로 유입됐고 이들을 ‘양공주’, ‘양색시’로 비난받았다. 김숙자 할머니(75)도 이 중 한명이었다. 떳떳하지 못했던 세월을 지나온 김숙자 할머니와 다른 기지촌 여성들은 항상 그늘 속에 숨어 지냈다. 움츠렸던 이들이 연극을 만들고 직접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편견의 시선을 거둬내고 세상을 향해 말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그녀들의 전후 생존기
KBS스페셜 <전쟁과 여성 - 3부 그녀의 꿈>에서는 전쟁의 상흔을 딛고 미국에 정착한 1세대 결혼 이민 여성과, 미군기지촌 인근에서 생계를 이어온 한·일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나아가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전통적 시각에 변화를 꾀하고자 한다.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