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중서부 해안도시 피에트라산타는 소도시지만 ‘조각가의 성지’로 명성이 높다. 대리석 산지가 가까운 덕인지 르네상스 시대부터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호안미로, 헨리 무어 등의 거장, 최근에는 베니스에서 거대한 조각 신작을 선보인 데미안 허스트까지 이곳에서 작업했다. 지난 11일 도시의 중심부 산타고스티노 교회와 두오모 광장에 대규모 조각전이 개막했다. 전시의 주인공은 경희대 조소과를 졸업한 뒤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미술원에서 유학하고 이곳에 정착해 25년째 작업중인 조각가 박은선(52). 한국 문화 홍보대사처럼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손님들을 맞은 부인이자 작가 이경희 씨는 유럽인 사이에서 나홀로 빛났다. 피에트라산타시(市)는 매년 8월 거장들로만 엄선해 전시를 기획하는데, 올해 박은선 작가가 그 높은 문턱을 넘었다. 그는 앞서 4월부터는 파도바에서, 지난해 7월에는 피렌체에서 대규모 전시작가로 초청돼 유럽에서도 문화적 자부심이 각별한 이탈리아를 파고들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지만, 예술가로서 세계 무대를 제패하기란 쉽지 않다. 이에 불구하고 최근 들어 세계 각지에서 한국 미술가들의 활약상이 들려와 ‘사드 한한령’ 등으로 위축된 한류(韓流)에 물길을 대주고 있다.
지난 24일 뉴욕에서는 한국화가 강선영이 미국의 저명한 ‘폴락 크레스너(Pollock-Krasner) 재단’에서 지원금 3만 달러를 수상했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미국을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 화가 잭슨 폴락 사후 그의 아내이자 작가인 리 크래스너가 1985년 설립한 이 재단은 전 세계 작가들을 대상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지원자를 선발한다. 국내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진 강선영 작가는 2001년 이화여대 한국화과를 졸업한 후 미국과 유럽 등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종이 설치작업과 ‘북아트’ 연작을 선보이는 그는 올 가을 대만에서 열리는 국제전, 11월 타이난 레지던시 등에 참여할 예정이다.
버려질 법한 일상용품을 재료로 기발한 설치작업을 선보이는 최정화 작가는 지난 19일 개막한 ‘동아시아문화도시 2017 교토:아시아회랑 현대미술전’에 참가했다. 이 전시는 한중일 3국의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매년 도시를 바꿔가며 열려 올해는 교토를 비롯해 대구와 중국 창사에서 막을 올렸다. 작가 김홍석은 지난 2007년 중국의 첸샤오시옹, 일본의 오자와 츠요시 등 3인이 결성한 아티스트그룹 ‘시징멘(西京人)’의 이름으로 함께했다. 이들 외에도 김수자·오인환·함경아·믹스라이스 등이 참여했다.
올해 5회를 맞아 자카르타 소재 아트원 뉴뮤지움에서 한창인 애니마믹스(Animamux) 비엔날레에는 한국 작가 김기라가 참가해 인도네시아 현지작가 헨드라 헤헤 하르소노와 협업 벽화프로젝트를 선보였다. 격년제 국제미술전인 비엔날레가 보통 특정 도시를 기반으로 개최되는 것과 달리 애니마믹스 비엔날레는 아시아를 중심으로 다양한 미술기관이 협력해 지역을 초월해 열리는 게 특징. 상하이를 시작으로 베이징,타이페이, 대구, 홍콩, 마카오 등이 협력했다. 미국에서 팝아트가 시작됐다면 ‘애니마믹스’는 아시아문화를 근간으로 만화·애니메이션에서 드러나는 젊고 새로운 미학 개념을 뜻한다. 아시아 작가 16인이 참여한 전시로 한국작가는 최정화·권기수·이혜림·최나리 등이 출품했다.
한편 유럽 현대미술의 심장 격인 파리 퐁피두센터는 양혜규 작가의 최근작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를 최근 소장품으로 확정했다. 초록과 연보라색의 블라인드 200여 개로 이뤄진 대작으로 이처럼 대형 설치작이 소장된 것은 이례적이라 더욱 반갑다. 양혜규는 다음 달 9일 베를린의 킨들현대미술센터에서 층고20m의 공간을 장악하는 대규모 블라인드 설치작품을 새로 선보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