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계가 철저하게 잘못했습니다.”
황주호 원자력학회장(경희대 부총장)이 쓴 자기 반성문에는 회한이 묻어 나왔다. 누구보다 우리나라 원전 기술 개발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났지만 건강한 발전을 위한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의 역할에 소홀했다는 원자력학계 대표학자의 고백이다. 답을 정해놓고 몰아가기 식이 아니라 국민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믿는 공론조사가 철저히 이뤄지기를 바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황 회장은 탈원전 정책의 배경이 된 ‘원전 마피아’라는 국민적 불신을 두고 “반대하는 사람들이야 싫으면 싫다고 할 수 있지만 그걸 제대로 알리지 못했던 원전업계와 학계가 잘못한 것”이라며 “특히 학계가 산업계를 이끌고 나가는 일종의 호루라기를 부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그 역할에서 소홀했다는 반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요즘처럼 서슬이 퍼런 시절에 공기업이 못 움직이니까 학계가 움직이는 것인데 그걸 두고 연구비 떨어질까봐 저런다고 매도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상아탑에 머물러 있지 않고 원자력에 관해 사회와 소통하면서 정책 개발에 힘을 기울여온 참여형 학자다. 황 회장은 노무현 정부 당시인 지난 2006년부터 3년간 사용후핵연료 관련 공론조사를 이끈 경험이 있다. 참여정부는 부안 사태 이후 공론조사의 필요성을 느끼고 원자력 발전 사업자, 학계, 환경운동단체 등이 모여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과 공론화 방안연구를 1년 동안 했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는 “당시 치열한 논쟁 끝에 합의를 도출한 것은 원전 정책과 사용후핵연료의 연계를 끊자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으로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하며 이해의 폭을 넓혔기 때문”이라며 최근 쫓기듯 급하게 추진되고 있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에 대해 이렇게 충고했다.
황 회장은 그러면서 탈원전을 비롯해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신재생에너지 기술에 대해 맹신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면서도 다른 에너지원 관련 기술에 대해서는 불신이 팽배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석탄 연료값은 가스보다 싸고 기술력도 발전해 이산화탄소도 더 배출하는데 굳이 그걸 왜 버리냐”며 “스마트폰이 없었으면 촛불도 성공할 수 없었던 것처럼 어떤 에너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련 기술 개발이 사회변화의 큰 기저 역할을 한다는 것부터 인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