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A(26)씨는 “어느 학교 나왔느냐”라는 말만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위축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을 한 A씨는 친구들보다 돈벌이는 빨리 시작했지만 사회생활을 할수록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보다 뒤처진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는 “친구들은 방학에 해외여행을 다닐 때 휴가도 없이 일만 했지만 사회적 인식은 좋지 않다”며 “4년제 대학을 나와 공무원이 되거나 대기업에 들어가야 성공한 삶이냐”고 되물었다.
청년은 우리 사회의 기둥이다. 대한민국을 떠받드는 허리로 커 나갈 청년층이 견실해야 우리 사회가 지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청년층의 중요성은 더 크다. 지난 2010년 노인 1명당 6.7명이었던 생산가능인구는 2030년 2.6명, 2040년 1.8명을 거쳐 2050년에는 1.4명으로 쪼그라든다. 특히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인 저출산의 시작점이 청년이다.
하지만 청년들은 성공에 대한 획일적인 관념과 안정적인 삶을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짓눌려 있다. 듀오휴먼라이프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2016년 이상적 배우자상’을 보면 남자는 연소득 4,997만원에 자산 2억6,554만원, 4년제 대졸 학력에 공무원이나 공사에 다니는 사람이었다. 아내도 비슷했는데 연 4,211만원을 벌면서 4년제 대학 출신에 공무원, 공사직원이었다.
배우자만 그런 것은 아니다. 취업사이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 45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니 희망 자녀직업 1위는 공무원이었다. 창업이나 도전보다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게 우리 사회의 주된 문화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청년들도 안전한 것만 찾는다. 한국무역협회가 2015년 실시한 대학생·대학원생 창업인식 조사를 보면 학생들의 창업 선호도는 6.1%에 불과하다. 반면 취업은 78.8%, 학업은 15.1%였다. 학생들은 ‘실패에 대한 부담(38.0%)’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답했다. 창업도 적다. 기업가정신 분석기관인 GEM(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이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주요국의 초기창업활동비율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는 6.9%로 미국(12.7%)이나 싱가포르(10.7%), 이스라엘(10.0%), 네덜란드(9.3%), 대만(8.2%) 등에 비해 크게 낮았다. 초기 창업활동 비율은 18~64세 인구 중 현재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사람의 비율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청년들 앞에 놓인 ‘좁은 외나무다리(전통적인 성공 루트)’를 대교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적 배우자상에 나오는 안정적이고 획일적인 성공 모델보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문화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구시대적인 남녀 역할론이나 ‘실패=끝’이라는 인식 개선, 가정과 일의 양립 등 행복의 기준에 대한 새로운 인식 등이 필요하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아버지는 안정적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가족관이나 회사는 정년까지 오래 다녀야 한다는 생각이 청년들의 선택의 폭을 좁히고 있다”며 “성공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닌 만큼 청년들의 기업가정신과 도전정신을 높일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년층에 대한 일자리와 교육, 출산문제를 통합해 접근하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지금은 이들 문제를 별개로 보고 각각의 대책을 내놓는데 실제로는 이들 문제는 하나로 보고 접근해야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개별 대책의 결과는 참혹하다. 출산만 해도 2006년부터 80조원을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되레 뒷걸음질치고 있다.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 이사장은 “실업과 교육, 출산은 하나로 연결돼 있는데 정부는 단기적인 정책만 쏟아낸다”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안정을 추구하는 사회 분위기→고소득 또는 공무원 선호→중소기업 외면→실업률 증가→만혼→출산율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청년층은 우리 사회의 디딤돌로 이들 문제에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단순히 청년 실업만을 놓고 접근해서는 안 되고 교육과 결혼, 출산, 육아를 같은 선상에 놓고 이를 동시에 풀 수 있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설명했다. /세종=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