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아는 최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JTBC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극본 백미경, 연출 김윤철) 종영 인터뷰를 가졌다. ‘품위있는 그녀’는 요동치는 욕망의 군상들 가운데 마주한 두 여인의 엇갈린 삶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김선아는 극 중 준재벌가 며느리 우아진(김희선 분)을 동경해 상류 사회로 편입하고자 하는 박복자 역을 맡았다.
“지난해 10월에 촬영 들어갔고 2월 말에 끝났어요. 이후에 후시와 내레이션이 있어서 끈을 놓지 못했죠. 잠간 놨다가 포스터 촬영, 제작발표회 때 다시 들었다가. 그러다가 방송이 시작됐을 때는 시청자 마인드로 봤어요. 방송 중간부터 나갔던 복자가 다시 들어오더라고요. 복자가 내 안에 조금 더 있고 싶은가 생각 들어서 그냥 냅두자고 생각했어요.”
사전제작 드라마라 촬영은 2월에 끝났지만 이후로 6개월가량 복자를 떠나보내지 못한 김선아였다. 방송 중간 SNS에 대사를 올리면서 복자는 이런 사람이다 알려주기도 했다. 종영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랬다. 복자의 과거 이야기를 하니 김선아는 눈시울을 붉혔다. 하루 종일 인터뷰를 하면서 여러 번 쏟아냈을 텐데도 복자에 대한 감정은 마르지 않았다.
“복자 과거가 6부가 넘어서야 나와요. 복자 어린 시절 이야기만 하면 우는데, 저한테 이게 정말 컸나 봐요. 10살 소녀의 갖지 못한 마론 인형, 붉은 눈시울이 떠올라요. 여기서 복자의 시간이 멈춘 것 같아요.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아이죠. 똑바른 길로 복자를 인도만 잘 해줬더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복자는 약간 빗나간 아이었던 거죠.”
그 ‘약간 빗나간 아이’는 욕망에 사로잡힌 여자가 된다. 복자가 한 행동만 두고 보면 악역이라고 칭할 만하다. 의도적으로 대기업 회장에게 접근해서 결혼을 하고, 감언이설로 회사를 받아 팔아넘긴 후 잠적한다. 주변 사람을 대할 때도 전혀 호락호락하지 않다. 드라마는 1회부터 복자가 죽은 것으로 시작했는데, 누가 범인이어도 어색하지 않을 인간관계였다.
“복자를 악역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따지고 보면 세상에 나쁜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다 나름의 사연이 있는 거죠. 예를 들면 ‘내 이름은 김삼순’ 같은 경우에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한 캐릭터 많아요. 그 당시에 별로 보지 못했던 모습도 보여드렸고요.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요.”
그래서일까. 김선아는 극 중 다른 인물을 해석할 때도 복자의 기준에서 생각했다. 악역은 아닌데 미움을 받으니 더욱 애정이 깃들었을 수도 있겠다. 특히 김선아는 복자를 죽인 안운규(이건우 분)이 또 다른 복자인 것 같다고 해석했다. 태생도 다르고 소위 ‘등급’도 다르지만 늘 혼자였고 외로웠다는 것은 똑같다고.
“환경은 다르지만 비슷해요. 어디까지나 저의 해석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범인이 운규였을까 생각해봤거든요.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을 전공하는 엄마가 자기 아들 마음을 못 봤잖요. 아들이 복자를 죽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요. 자기 엄마한테 왜 그랬냐고. 그런데 엄마는 자기 아들이 왜 그러는지 알았을까요.”
김선아는 그 속에서 드라마가 던지는 메시지를 읽었다. 극 중 김희선의 딸의 시선에서 복자는 항상 꿈을 꾸고 있었다. 김선아는 복자가 딸의 또래에 멈춰있기 때문에 그 아이에 시선에서 읽힌 것이 아닐까 해석된다고 덧붙였다. 어린 시절 복자에게 따뜻하게 손 내밀어주고 말 한마디 건네줬다면 그 시기를 벗어나 성장할 수 있었을 테다.
“아진이 복자와의 첫 만남에서 어디서든 행복하라는 쪽지 하나를 줘요. 복자는 그것을 죽는 날까지 가지고 있었죠. 그 작은 것에서 출발한 마음이 욕망으로 변한 거예요. 어렸을 때 들었다면 복자의 길은 조금 달랐을 수도 있겠죠. 사실 별 거 아닌 쪽지 하나가 둘 사이에서 오고가면서 커졌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김선아는 기자에게 반대로 질문을 했다. 복자가 드라마 초반 자기 집에서 책을 보며 먹었던 김치는 과연 풍숙정의 김치일까 복자의 집에서 담근 김치일까. 김선아는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다”며 자신의 해석을 내놨다. 풍숙정의 김치와 집에서 담근 김치가 대비되듯, 복자가 진정 원했던 것도 상류층의 겉포장이 아닌 진심이 아니었을까 라고.
“마지막에 경찰서에서 두 분이 이야기하잖아요. 조미료 범벅이라고요. 거기서 답이 나오는 거죠. 재료는 똑같은데 누구는 이만큼 돈을 주고 사먹고 누구는 이걸 왜 먹냐고 말하고. 너무 멋지지 않나요. 별거 아닌 조미료, 흔히 먹는 김치 등 별거 아닌 것을 별것처럼 포장해 준 멋진 글과 연출이요.”
처음 복자를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던 만큼 내보내는 것도 시간이 필요한 일 같았다. 김선아는 최근 몇 년 동안 어두운 역할을 하다 보니 이제는 밝은 것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복수하고 다니다 보니 사람이 처지는 것은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어느 때부터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과 ‘품위있는 그녀’를 비교하기는 힘들어요. 둘이 싸워봐야겠는데요(웃음). 삼순이는 사랑도 많이 받고 자랐고 달달한 것도 먹고 사랑도 했죠. 그런데 복자는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복자는 머리가 좋은 사람이에요. 감독님께서도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거든요. 이게 진심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그래서 저도 헷갈렸죠.”
그런 복자였음에도 김선아는 결국 해냈다. 마지막 회에서 시청률 12%를 넘기며 JTBC 드라마의 새 역사를 썼고, 시청자들에게도 연기적으로 어마어마한 호평을 받았다. 그렇다면 본인에게는 과연 몇 점을 내릴까. 그래도 아쉬울까 이만하면 만족할까. 김선아의 답변은 그저 솔직했다. 100% 만족은 아니었지만 처음 만난 복자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
“아쉬운 게 없으면 사람이 아니죠. 연기가 됐건 뭐가 됐건. 그래도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요. 첫눈에 반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해본 적이 없어요. 매번 처음이다 생각하고 달리고 설레고 싶죠. 앞으로도 배우로서 열심히 할 계획입니다. 아직 살아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의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죠.”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