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의 첫 예산안을 뜯어보면 시차를 두고 재정에 폭탄으로 돌아올 것이 곳곳에 숨어 있다. 당장 내년 인건비 부담만도 4,000억원에 이르는 공무원 충원이 대표적이다. 아동수당은 매년 수십억원을 버는 부유한 가정과 가난한 가정 모두에 균등하게 지급해 별 효과는 못 보고 돈만 쓸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성장을 촉진하는 예산은 ‘쥐꼬리’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찔끔 편성됐다. 내년 예산안의 주요 특징과 한계를 네 가지 포인트로 정리했다.
①인건비만 4,000억원…공무원채용 알박기=정부는 국민생활·안전과 관련된 분야의 중앙직 공무원 1만5,000명을 내년에 충원하기로 했다. 인건비는 내년에만 4,000억원이다. 지방 공무원도 1만5,000명을 따로 채용해 지방재정 부담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이들의 임금이 매년 올라가고 30년간 근속을 하며 공무원연금으로 지급될 돈까지 감안하면 재정 소요는 더 올라간다. 이번 공무원 채용이 지속적인 예산 투입으로 연결되는 ‘알박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국회예산정책처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대로 5년간 17만4,000명의 공무원을 채용하면 모두 9급으로 채용해도 5년간 17조8,000억원의 재정이 소요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기본급과 각종 수당, 공무원연금·건강보험 등 법정부담금을 합하고 매년 임금상승률을 가정한 수치다. 대선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언급한 7급 7호봉을 기준으로 하면 28조6,000억원으로 부담은 더 뛴다.
②복지 강화에…의무지출 비중 사상 첫 50% 돌파=한 번 편성되면 줄일 수 없는 ‘의무지출’ 비중도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서는 것도 주요 포인트다. 올해 49.2%에서 50.8%로 뛴다. 지난해 정부는 의무지출이 50%를 넘기는 시점이 오는 2019년이라고 예상했지만 기초연금 단가 인상 등 복지정책이 강화되면서 1년 앞당겨졌다. 의무지출에는 복지지출과 중앙정부 세수의 39.5%가 자동으로 내려가는 지방교부금, 국가부채에 대한 이자 지급액 등이 들어간다.
의무지출 비중이 커지면서 재정건전성을 순식간에 악화시킬 가능성도 높아졌다. 세금 수입이 저조할 때는 정부 지출도 다소 줄여 재정건전성을 관리해야 하지만 의무지출이 높아지면 줄일 수 있는 여지가 줄어 국가부채가 단번에 급격히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왕재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재정의 경직성이 높아져 정부의 재정통제력을 약화 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③묻지마식 저출산 대책…아동수당에 1조1,000억원=아동수당 신설도 눈에 띈다. 5세 이하 아동을 둔 가구면 소득에 상관없이 월 10만원을 주는 제도인데 내년에만 1조1,000억원, 5년간 9조6,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재원이 투자된다. 하지만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벌써 나온다. 출산율을 올리려면 아이를 안 낳는 계층을 타깃화해야 하는데 고작 10만원 준다고 아이를 안 낳는 부부가 출산을 할 가능성은 적다. 동시에 아동수당이 없어도 아이를 낳는 부부에게 돈을 지원해 재정만 축낼 수 있다는 것이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예산실장마저 “아동수당은 반발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을 정도다.
선진국에서도 아동수당을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함으로써 ‘선택과 집중’을 하는 추세인데 우리만 시대에 역주행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일본은 지난 2012년, 영국은 2013년, 프랑스는 2015년부터 고소득자에 대한 지원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고쳤으며 독일·뉴질랜드·호주 등도 소득과 연계해 수당을 차등 지급하고 있다. 비슷한 성격의 지원 제도인 양육수당과 중복 지급하기로 하면서 불필요한 행정 비용이 늘고 제도 효과는 떨어지게 된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④성장예산은 쥐꼬리…SOC 20% 삭감=반면 경제성장을 이끌 수 있는 예산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는 예산안 특징으로 5대 분야에 중점 투자하겠다고 밝히며 이 중 ‘혁신성장’도 포함 시켰다. 그러나 내역을 보면 4차 산업혁명 핵심 기술에 1,000억원 증액한 7,000억원 등이 그나마 눈에 띄고 나머지는 중소기업 공동브랜드 개발에 5억원 등에 불과하다. 1조7,000억원이 추가로 투입되는 기초연금 등에 비하면 초라하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브리핑에서 “혁신성장은 규제 완화 등 돈보다 정책여건 마련이 필요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미국·일본·중국 등은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예산을 적극적으로 편성하고 있다”며 “규제 완화만 가지고 혁신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발상은 안이하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2013년 뇌과학 연구를 위해 2025년까지 50억달러(약 5조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고 일본은 로봇 육성을 위해 예산을 2020년까지 1조2,000억엔(약 12조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적은 것도 성장에는 부정적이다. 정부는 내년 SOC 예산을 지난해보다 20%나 깎아 17조7,000억원으로 편성했다. SOC는 복지지출에 비해 성장률 제고 효과가 큰데 지출이 줄며 성장률을 갉아먹을 수 있다.
/세종=이태규·서민준기자 classic@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