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의 일감 몰아주기 제재가 법원으로부터 첫 제동이 걸리면서 김상조 공정위원장의 취임 이후 속도를 내고 있는 재벌개혁이 암초를 만났다. 김 위원장은 취임 이후 재벌개혁 과제 중 총수일가 사익 편취 규제 및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서는 줄곧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왔다. 45대 그룹의 실태조사를 마친 뒤 하림그룹 등에 대해 진행하는 직권조사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정위는 이번 법원의 판단이 총수일가 등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의 입법 취지에 어긋난다고 판단하고 있다. 총수일가 사익 편취는 기업 생태계를 흐리는 대표적 악질 행위 중 하나다.
현행 공정거래법 23조의2는 자산이 5조원 이상인 공시 대상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총수 및 그 친족인 특수관계인에게 부당한 이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기업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악질적 행위인 만큼 원래 법 조항보다 부당성 입증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따로 떼냈다.
문제는 첫 법정 다툼에서 법원이 부당성 입증에도 엄격한 기준을 내밀었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지난 2016년 11월 대한항공이 조양호 회장(한진그룹 회장)의 자녀 조현아·원태·현민씨가 주식 대부분을 소유한 계열사 싸이버스카이·유니컨버스와 한 부당 거래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사익 편취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며 시정명령과 과징금 14억4,000만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악질적 행위인 만큼 입증을 쉽게 하기 위해 법 조문을 바꿨는데 법원의 판단이 입법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며 “항소 여부를 판단한 뒤 필요하면 대법원으로 가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위관계자는 “기존의 부당 지원행위 금지 규정으로도 처벌할 수 있지만 새롭게 조항을 만든 것은 그만큼 입증을 쉽게 하기 위함인데 그런 부분이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재계나 법조계 안팎에서는 공정위가 무리수를 뒀다는 평가도 있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한 법조계 관계자는 “당시 대한항공과 계열사들의 거래는 시장가격에 크게 어긋나지 않았고 조사 결과 문제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도 “오너 일가의 경영 참여에 대해 일단 색안경을 끼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며 “공정위도 무작정 과징금부터 세게 매기는 행위를 자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법적으로는 문제시되지 않지만 일부 오해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재계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며 “기업들이 보다 면밀하게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상훈기자 강도원기자 ksh25t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