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허점 드러낸 '서울 시민참여예산제'

도용 아이디어로 사업 제안

온라인 투표 참여도 저조

市 "필터링 과정 보완할 것"



지난달 28일 사회적 단체인 ‘청춘상담소 좀놀아본언니들’을 운영하고 있는 장재열 대표는 서울시 시민참여예산 목록에 올라온 제안서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자신의 상담소 이름과 취지, 프로그램까지 그대로 베낀 사업계획서가 강동구의 한 사회복지관의 참여예산형 사업 아이템으로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이 아이템은 시민참여예산위원회 심사를 거쳐 최종 선정을 위한 시민정책 온라인투표 목록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었다. 장 대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아이템 도용 문제를 제기했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서울시는 아이디어 제안자에게 ‘자진철회’를 요청하고 최종 시민투표 목록에서 삭제했다. 장 대표는 “유사사업의 존재 여부에 대한 확인도 하지 않고, 신청예산의 상당 부분이 집기류 구입 등 자산 취득인데 아이디어가 어찌 심사를 통과했는지 의문”이라며 “위원회와 시 소관부서의 필터링 과정에 의구심이 든다”고 토로했다.

서울시는 6년 전부터 지역사업 예산지원을 시민투표 등으로 결정하는 ‘시민참여예산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시민 참여가 저조한데다 민간 아이디어를 도용해 예산을 따내려는 사례도 발생하는 등 제도의 허점을 곳곳에서 드러냈다.


서울시는 지난달 21일부터 이달 2일까지 내년도 시민참여예산을 편성하기 위한 시민 온라인투표를 벌이고 있다. 내년도 시 예산 중 555억원을 어떻게 쓸지 시민이 결정하는 과정이다. 주민자치에 초점을 두고 당사자가 직접 정책과 예산을 결정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제도적 허점에 대한 보완 없이는 진정한 ‘직접민주주의’ 실현의 창구가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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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이번 아이디어 도용 사례를 놓고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참여예산 제안은 아이디어 공모가 아닌 좋은 정책을 곳곳에 도입해 확산하자는 게 목적”이라며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 탈락시킬 사유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독창적 아이디어가 ‘차용’이 아닌 선한 취지였다는 이유로 ‘도용’되는 상황이 빚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 시는 “협의회 1·2차 심사 단계에서 일정 기간 해당 제안 아이템을 공고해 혹시 있을지 모를 사업 아이디어 도용 여부를 확인하고 전문위원을 강화해 필터링 과정을 보완하겠다”고 덧붙였다.

시민 다수가 참여예산제에 대해 모르거나 구청 직원의 주민투표 독려에 마지못해 나서는 등 부족한 홍보도 시민참여예산이 넘어야 할 산이다. 서울시민 1,000만명 가운데 마감 하루 전인 1일 오후 2시께까지 온라인투표 참여자는 11만명에 그쳤다. ‘용감한 기세’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 시민은 “특정 구나 동이라는 한정된 생활 반경에서 사는데 서울 전체 문제를 다루고 이를 선택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며 “지역구별로 안건을 구분하고 세분화해 투표할 수 있는 시스템 정비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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