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당이 안철수 대표의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 이미지, 정체가 모호한 자강론 등의 이유 때문에 지난 5·9 대선에서 패배했다는 자체 평가보고서를 1일 공개했다. 이는 패선 패배의 주요 원인을 안 대표에게 돌리는 것으로 당내 갈등이 격화될 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민의당은 1일 대선평가위원회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19대 대통령 선거 평가보고서’ 전문을 공개했다. 위원회는 총평에서 안 대표에 대해 “선거 승리 전략도, 정책에 대한 철학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패선 배의 원으로 당시 후보였던 안철수 대표의 연약한 지지층 및 모호한 중도성과 대중성, TV토론 전략의 실패 등을 꼽았다.
특히 안 대표가 가치를 제대로 담지 못한채 중도성만 강조해 ‘MB(이명박 전 대통령) 아바타’라는 이미지만 강화했고 캠프가 사조직을 중심으로 운영되면서 독선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졌다며 안 대표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위원회는 “정책에 대한 후보의 입장이 불분명하고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을 치렀다. TV토론에서는 정치적 수사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모습이었다”며 “아무런 가치도 담기지 않고 내용도 없는 중도를 표방하면서, 오히려 ‘MB아바타’라는 이미지를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자강론에 대해서도 “모호한 정책 태도로 호남과 영남 모두로부터 외면받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고 혹평했다. 위원회는 이번 대선이 ‘적폐청산’ 요구가 강력해진 특수 상황이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고 질타했다. 보고서는 “민주당과 각을 세우기보다는 자유한국당과 각을 세우는 전략이 필요했다”며 “대선의 핵심 슬로건은 촛불혁명과 적폐청산이었으나 안 대표는 계속 여기서 거리를 뒀다. 오히려 적폐청산에 반대한다는 이미지, 대북정책과 대외정책에 대해 비판은 하지만 대안은 없다는 이미지를 심어줬다”고 비판했다.
특히 “경쟁 후보가 ‘박지원 상왕론’ 프레임을 가동할 때 안 대표의 리더십은 전혀 발휘되지 못했다”며 “박 전 대표는 오히려 ‘평양특사’ 발언 등을 하며 상왕론 프레임을 강화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의 메시지를 껴안은 반면, 안 대표는 촛불에 대해 원칙적인 보수의 이미지조차 주지 못하고 MB 아바타, 박지원 상왕론 같은 반(反)촛불 이미지에 갇혔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보고서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며 보수정당 지지층 35% 중 무려 25%가 이탈했는데도 이들 ‘스윙 보수층’의 상당 부분이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이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으로 흡수된 것을 패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선대위 지도부나 캠프 운용이 사조직에 의존 방식에 대해서도 문제를 지적했다. 선거 홍보에 대해 “정치홍보 경험이 전혀 없는 (광고전문가) 이제석이라는 개인에게 선거와 관련된 모든 홍보를 맡기고 전권을 부여하는 사태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캠프는 당 조직보다 안 대표의 사조직을 중심으로 움직였다는 평가도 나왔다”며 “공론화 과정 없이 밀실에서 결정된 것을 공조직이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독선적 의사결정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당론을 변경하는 과정에서도 당과 소통이 되지 않았던 점 등도 문제로 거론됐다. 앞서 평가위는 지난 6월부터 3개월간 175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를 위해 설문조사와 주요 관계자 인터뷰 등을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