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Science&Market]'혼(魂)나는 문화’서 ‘신나는 문화’로

김진현 KIST 뇌과학연구소 기능커넥토믹스연구단장

성급한 결과물 원하는 풍토

소극적·수동적 태도 만들어

책임있는 연구자에 자유 부여

창의적 성과 낼 수 있게 도와야

김진현 KIST 뇌과학연구소 기능커넥토믹스연구단장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4차 산업혁명이 논의되고 있고 변화하는 시대의 중심에는 과학과 기술이 있다. 뇌를 연구하는 과학자이기 이전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어릴 적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등장하던 신기한 것들이 현실에서 재현되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따금 짜릿한 흥분마저 느낀다. ‘미지의 소우주’로 불리는 뇌를 연구 대상으로 하는 뇌과학은 최첨단기술들을 접목해 하루하루 새로운 진전을 이룬다는 점에서 가장 ‘핫(hot)’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최첨단의 연구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문화가 있다. 동료 연구원들과 일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혼나면 어쩌지’ ‘혼나기 전에 빨리 해야지’ ‘이렇게 하면 혼날 거야’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궁금해서 국어사전을 열어 ‘혼나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견디기 어려운 일을 겪어서 호된 시련을 받아, 매우 놀라거나 힘들거나 무서워서 사람의 몸 안에 있는 혼(魂)이 빠져나갈 지경에 이른다’고 해서 생긴 말이라고 한다.

혼을 내는 사람과 혼이 나는 사람은 수평적이 아닌 수직적인 관계에 있다. 지도교수와 학생, 부모와 자녀, 그리고 직장 상사와 부하의 관계 등을 떠올릴 수 있다. 뇌를 연구하는 입장에서 혼을 뇌로 해석한다면, ‘혼난다’는 표현의 이면에는 사회제도나 상하관계가 한 사람의 생각과 행동에 관여하는 뇌 기능을 박탈한다는 극단적 해석도 가능하다.


일반적 시각에서 ‘혼난다’는 표현은 사회법규나 관습·정책·제도를 따르지 않았을 때 가해지는 불이익의 다른 표현이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우리는 일반적으로 ‘혼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대부분의 학생들, 심지어 연구자들이나 교수들도 이런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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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그러한 태도가 좋은 연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이를 구현하고자 하는 탐구정신이 기초가 돼야 할 과학기술 분야에서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표현이 초래할 수 있는 무의식적인 ‘위축의 나비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적어도 필자가 몸 담고 있는 실험실 학생들은 그런 표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수차례 지적했지만 고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런 표현이 만연한 것은 주어진 과제에 대한 결과물을 너무 자주 성급하게 요청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신뢰가 바탕이 되는 사회(trust-based society)는 누구나 공감하는 진리이다. 현재 과학기술 정책과 그에 따른 연구관리 방식이 과연 연구자들을 믿고 역량을 마음껏 펼 수 있게 하는지 의문이다. 연구자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에 연구비가 제대로 쓰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잦은 보고서와 성과물을 요구한다. 물론 이상과 현실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연구자들에게 ‘혼나는 문화’가 아닌 ‘신나는 문화’를 만들어주기를 새 정부와 과학기술계 리더들에게 간곡히 부탁한다.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과학기술 정책이 수립되고 그에 따른 연구관리가 이뤄지는 환경에서 책임의식으로 무장한 과학자가 보다 많은 자유를 갖고 신나게 연구할 때만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성과가 쏟아진다.

많은 사람이 과학은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진정한 과학자는 두려움보다 위험을 감수하는(risk-taking) ‘자유로운 혼’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어느 것에도 혼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확고한 주체의식을 가진 강건한 과학자들이 미래사회를 신나게 준비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와 과학자들 모두가 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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