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미소짓는 붓다'

0715A39   만파




냉전이 한창이던 1974년 5월18일, 인도 북서부에 위치한 라자스탄 사막에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비동맹을 이끌던 인도의 첫 번째 핵실험 순간이다. 경제적 곤궁에 처한 인도 국민은 13㏏의 파괴력에 환호했다. 10여년 전 중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굴욕감도 죽음의 구름에 날려버렸다. 핵클럽의 반응은 엇갈렸다. 미국은 차관 중단 등 경제적 보복을 다짐한 반면 소련(현 러시아)은 평화적 이용 목적이라며 감쌌다. 소련의 지지는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와 동맹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인도의 비밀 핵실험 프로젝트는 ‘미소 짓는 붓다(Smiling Buddha)’로 부른다. 첫 실험일이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인도 경축일인 데서 유래했다. 국제질서의 냉혹한 현실을 깨달았다는 의미지만 살생을 금하는 불교 종주국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원래 인도는 핵무기 개발에 관심이 없었다. 1947년 독립 이후 비동맹을 추구하던 인도는 간디가 주창한 비폭력의 유산이 지배했다. 재정상황도 여의치 못했다. 그럼에도 1962년 중국과 벌인 국지전에서의 패배는 게임 룰을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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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핵무장이 국경을 맞대고 세 차례 전쟁을 치른 파키스탄을 자극한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핵 기반이 취약한 파키스탄은 해외 원자력 회사에 근무하던 자국인 박사가 우라늄 농축 기술을 훔쳐 귀국하면서 핵 개발의 전기를 맞는다. 파키스탄의 첫 핵실험(1998.5.28)은 인도가 두 번째 핵실험을 한 지 불과 15일 만이다. ‘눈에는 눈’이라는 맞대응이다. 당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제재 외에 다른 선택이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외교수사에 불과했다. 이미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계기로 미국은 파키스탄 핵 개발에 면죄부를 줬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핵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핵무장론이 고개를 드는 상황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전술핵 재배치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북한이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으니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논리가 먹혀들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의 핵 폭주가 촉발한 동북아 군비경쟁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권구찬 논설위원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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