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공공기관 취업도 이제는 눈치작전?

46개 공공기관 합동채용…비슷한 회사는 같은 날 필기시험

중복지원 원천차단, 복수합격·합격 후 퇴사 사라져

채용비용 아끼지만, 수험생 선택기회 제한 지적도



공사·공단은 일반 기업보다 임금과 복지, 고용보장 등 근무 환경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신(神)의 직장’으로 통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취업준비생들은 어디든 ‘공공기관’을 목표로 한다. 본격적인 채용시즌이 다가오면 공공기관마다 응시경쟁률이 수백 대 일에 달하고 주말마다 필기고사장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수험생 한 명이 많게는 수십 곳의 공공기관에 응시하면서 부작용도 나타났다. 채용하는 쪽에서는 관리와 비용 소요가 커지고, 다른 기관에 중복 합격한 신입사원이 금세 퇴사하는 일도 잦았다. 수험생도 수십 건의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고 고사장을 찾아 전국 곳곳을 떠돌아다녔다.

이런 부작용을 없애보자고 나타난 게 합동채용이다. 2006년 금융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필기 시험일을 통일했고, 현재는 기업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예금보험공사 등 정책금융 4곳과 부산·울산·인천·여수광양항만 등 항만 4사가 한 날 필기를 치른다. 7일 기획재정부가 내놓은 공공기관 합동채용 확대 방안은 올해 46개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점차 참여기관을 늘린다는 계획을 담았다.


◇46개 공공기관, 기관별 필기시험일 통합=올해 합동채용 규모는 46개 공공기관, 3,500여명 규모다. 올해 처음 합동채용을 확대하는 만큼 생각지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46곳을 사회간접자본(SOC)분야와 에너지, 정책금융, 보건의료, 농림, 환경, 문화예술 등 7개 분야 15개 그룹으로 그룹별 필기 시험일만 통합시켰다. SOC 분야 공항(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은 이달 30일, 철도(코레일관광개발, 코레일유통, 철도시설공단)는 10월 28일 필기시험을, 에너지 분야 중 남부발전과 동서발전, 서부발전은 11월 11일, 남동발전과 수력원자력, 중부발전은 11월 18일을 필기시험일로 결정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보건의료분야 2개 공공기관과 강원랜드, 국민체육진흥공단, 관광공사, 체육산업개발 등 문화예술 분야 4개 공공기관은 11월 4일 필기시험을 실시할 예정이다.

‘금융 A매치’로 불리는 정책금융기관의 필기 시험일은 10월 21로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예금보험공사·기업은행·무역보험공사·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7곳이 일제히 고사를 치른다. 230여개 공공기관은 개별채용을 그대로 진행할 방침이다. 다만 필기시험이 통상 토·일요일에 진행되기 때문에 합동채용 46곳의 시험일에 더 많은 기관의 시험이 겹칠 수 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공기업 입시학원에 수험생 모집 광고물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공기업 입시학원에 수험생 모집 광고물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효율성·비용 vs 기회와 선택=정부는 합동채용 방식이 중복합격에 따른 연쇄 이동 감소, 해당 기관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인력 확보 등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연중 기관별 분산채용 방식은 과도한 응시 경쟁과 중복 합격자 연쇄 이동 등으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것. 부설기관 포함 355개 공공기관의 설문조사 결과 2014~2016년 중복합격에 따른 이직자는 870명 수준이다. S기관의 경우 올해 상반기 채용에 1만1,000명이 지원했으나 실제 7,000여명만 응시해 결시율이 36%를 넘었다. 합동채용에 참여하다 지난해 별도 채용에 나섰던 정책금융 분야 K기관은 경쟁률이 상승하고 중복합격 이직자가 10명이 발생해 올해 다시 합동채용에 참여한다.


합동채용으로 행정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올해 상반기 합동채용을 벌인 항만4사는 고사장 비용과 홍보비 등 1,000여만원을 아꼈다고 기재부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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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취업준비생들의 선호도가 높은 공공기관이 합동채용을 실시하면 응시기회가 줄어든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나서서 공공기관 입장에서만 판단해 취업 기회를 제한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대학 취업 컨설팅 전문가인 이우곤 성균관대 겸임교수는 “이공계 출신들은 자신 전공에 맞는 특정 산업에만 지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분야별로 한 날 시험을 치르면 응시 기회가 대폭 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서울지역 사립대의 한 취업 담당자는 “수험생은 고려하지 않고 채용기관의 편의만 생각했다”며 “필기시험 합격 여부가 실력이 아닌 눈치작전과 운에 좌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 노량진의 한 학원 강의실. 쉬는 시간을 맞아 수험생들이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있다. /연합뉴스서울 노량진의 한 학원 강의실. 쉬는 시간을 맞아 수험생들이 부족한 잠을 보충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험생도 동상이몽(同床異夢)=수험생들 사이에서도 합동채용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더 많은 응시기회가 사라져 불만을 느끼는가 하면 시험일자가 겹쳐 실력자들이 한쪽에 몰릴 경우 상대적으로 준비가 덜 된 응시자가 운으로 합격하는 건 잘못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박민철(23)씨는 “채용기관에서 우수한 자원을 선발하려면 어느 정도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며 “기관의 효율성과 응시생의 선택권을 맞바꾼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일부 고득점자들이 중복 합격하는 경우 다른 수험생이 취업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의견도 있다. 대학생 김찬우(24)씨는 “많은 수험생에게 고른 취업 기회가 생겼다”며 “수험생도 시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합동채용이 확대되면 대학입시처럼 같은 날 치러지는 기관 중 어느 곳에 응시할지를 두고 눈치작전도 치열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응시 기회가 급격히 축소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룹별 시험일자를 다양화했다”며 “하반기 시범 추진 결과를 평가해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임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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