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재능이 풍부한 조영남은 가수, 화가, 방송인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펼쳐왔다. 서울대 성악과 출신으로 대중 음악인의 길을 걸어온 가수 조영남은 ‘딜라일라’(1968),‘제비’(1970), ‘화개장터’(1988)등으로 관객을 만나왔다. 사실 조영남의 음악 원천은 클래식이다. 첫 오페라 무대에 도전장을 내민 그를 청담동 자택에서 만났다.
=오페라 ‘청’ 출연 제안에 흔쾌히 수락했다고 들었어요.
▲ 가온오페라단 대표인 테너 강훈씨가 제안해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지. 강훈씨가 내 음악회에 출연했던 것처럼, 나 역시 강훈씨 작품에 출연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금방 오케이했지.
=그렇다면 강훈 대표에 대한 의리가 우선이었다는 말인가요?
▲ 의리라고 볼 순 없어. 사람이라면 해야 하는거야. 우리가 ‘의리’를 대단하게 생각하는 버릇이 있는데, 사실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의리’야. 그리고 ‘솔직하게 말해서’ 이런 말도 싫어하지.
= 기본적으로 인간이라면 해야 하는 건데 티를 내서 말하는 사람을 싫어하다는 뜻이죠?
▲ 못 알아듣는 경우도 많아서 (하나 하나 설명해야 해서)갑갑한데, 바로 알아들으니까 참 편하다. 의리는 찾아서 될 게 아니야. 우리가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지.
=선생님의 첫 오페라 출연이란 점에서도 화제가 될 듯 해요.
▲ 대학교 다닐 때 했었어. 오페라 ‘잔니스키키’ 주인공을 했으니까 첫 오페라는 아니지. 그 후 오페라는 못했지. 곧장 대중가요계로 나왔으니까 기회가 없었지.
=서울대 성악과, 한양대 성악과 2곳 모두에서 성악을 배우신거죠?
▲한양대학교를 2학년까지 다니다가 서울대 음대로 간거지.
= 오페라 ‘청’에서 어떤 역으로 출연하시는지요?
▲ 이번은 대단한 역할이라고 말하기 보단, 우정출연이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표현할까. 내 역할에 대한 구체적인 공개 여부는 연출가랑 논의해봐야 해. 오페라에서 뭘 부를지는 아직 연구 중이야.
=오페라 공연은 자주 보러 가세요? 오페라의 대중성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 가끔 보러가긴 해. 오페라 쪽은 애를 먹고 있긴 하지. 관객이 없다고. 뮤지컬이 대중화된 이후로 오페라에 대해선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평이 많이 나왔잖아. 고급예술이란 게 흥행이 잘 안되니까 힘들 수 밖에 없어. 오페라는 고전음악이라는 어려운 음악이 뒤에 깔리니 쉽지 않지.
=JTBC 팬텀싱어 시즌 2에서 활약 중인 전태원씨도 출연한다고 들었어요. 대중가수가 출연한다는 소식이, 오페라 마니아가 아닌 일반 관객들도 오페라 공연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 표 파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쉽지는 않겠지. 오페라 팬들이 늘어나길 바라고는 있어. 국립오페라단 ‘동백꽃 아가씨’에서 채시라씨가 변사 역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현대적인 걸 가미해서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는 오페라를 만들기 위해 몸부림 치는거지.
=성악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있으실지요?
▲ 이탈리아 성악가인 안드레 보첼리(Andrea Bocelli)를 좋아해. 앞이 안 보이는 장님가수이긴 한데, 노래를 제일 잘하지. 오페라부터 일반대중음악까지 소화해 내는 가수 중 제일 잘 한다고 생각해.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클래식계 테너 중엔 최고였지. 반면 플라시도 도밍고가 크로스 오버 노래인 ‘퍼햅스 러브’에 성공한 것처럼 하지는 못했어. 클래식과 크로스오버 음악 모두를 다 잘한 게 바로 보첼리야. 보첼 리가 테너 노래를 부를 땐 내가 볼 때는 파바로티나 호세 카레라스, 도밍고보다 잘 했어. 어떤 노래도 완벽하게 잘 하는 가수지. 그래서 난 생리적으로 보첼리를 제일 좋아하게 됐어.
=명곡 향수를 부르신 국내 성악가 박인수 선생님도 좋아하시겠네요.
▲ 국내에선 박인수 선생님을 좋아하지. 굉장히 용기있는 형이지. 당시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잖아. 그 뿐 아니라, 이동원씨랑 멋있게 ‘향수’를 소화해냈잖아.
=국내 오페라 공연에서 재미있게 보신 작품이 있으세요?
▲ 좋은 질문이다. ‘그대의 찬 손’ 노래 나오는 국립오페라단 작품을 재미있게 봤어.
= 푸치니의 ‘라보엠’ 말씀하시는거죠? 국립오페라단에서 했던 ‘라보엠’이라면 여러 번 공연 된 마르코 간디니 연출작품 말씀 하시는거죠?
▲ 외국 연출이 했던 게 맞아. 무대 장치가 새롭고, 막 전환을 잘 해서 인상이 남았어. 연출가가 장면 장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아이디어가 좋더라구. 그래서 좋았던 것 같아.
=막과 막 사이에 ‘쿵쾅’ ‘쿵쾅’ 전환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막 전환 시간이 들어오면, 재미있게 보다가도 집중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렇지 않았던 오페라여서 저 역시 좋았어요. 선생님이 오페라 연출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 오페라 연출을 해보고 싶어. 옛날부터 그 생각을 했어. ‘토스카’, ‘라트라비아타’ 등 대부분 일상적인 걸 노멀하게 연출하는데, 우리나라 연출 작품 보면 재미가 없어. 특히 주역 성악가들은 물론 합창단의 움직임이 너무 없어. 합창단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역할을 만들어주고 싶어. 장면 장면이 잽싸게 넘어갈 수 있도록, 기술을 발휘해서 압축시켜서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
=곧 선생님이 연출한 오페라를 볼 수 있을까요?
▲ 두고 봐야지. 연출이 종합예술이잖아. 사방을 한 눈에 볼 줄 아는 연출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조건을 다 갖춘 연출자를 찾기가 쉽지 않지. 난 음대 다닐 때, 서울대 음대서 오태석 연출을 초청해서 공연 올린 걸 옆에서 봤어. 당시엔 오태석 연출이 지금처럼 유명하지 않았을 때지. 그때 연출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운거지. 나도 몰랐는데, (극단 목화)의 오태석 연출이 우리나라 최고의 연출가가 돼 있더라구. 그 분이 오페라 연출을 해도 좋을 것 같아.
=건강은 괜찮으세요? 노래를 계속 부르시려면 체력관리도 빼놓을 수 없을텐데요.
▲ 노래나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선 반드시 체력관리를 해야지. 맞아 제일 중요한 일이지. 운동이라기 보단 자전거를 자주 타는 편이야. 2시간가량 자전거를 타면 하남 초입까지 갔다 올 수 있어. 내 건강? 뭐라고 해야 할까. 근근이 버티는 거지. 노인네 삶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버티는 게 노인네 삶의 형태야.
= 선생님 입에서 직접 듣는 ‘노인네’란 표현이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 우리 동양 사람들은 ‘늙음과 젊음’에 대해 굉장히 예민하지. 나도 예민해. 하지만 내가 노인이 됐구나 하는 건 혼자 느끼는거지. 누군가 날 보고 ‘노인’이라고 하면 듣기 좋진 않아. 노인임에 틀림없는데도 말이지.